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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n 01. 2022

시스템 속의 개미귀신 이야기

Don’t do anything for the time being.

  살다 보면 거짓에 당할 수도 있다. 뭐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자고이래 진실이란 행복의 근원일 수 없으며, 생사가 걸린 치명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도적 고의아닐 수 있겠지만, 기만 설계자 뒤편에는  상위 설계자가 레버리지를 쥐고 있는 허술한 질서 다. 

  서두부터 얘기가 복잡할 것 같지만 너무 간단하다. 이것은 아카데미컬한 연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살보면 세상이 전부 거짓은 아니건만, 나머지 절반마저 진실이 아니라는 걸 어렵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살아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해독불가의 괴리라는 점이다.

아카데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일탈하고 있고, 믿어주는 만큼 삶의 질을 부패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기술의 범주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학계의 관행으로 논문이라는 거대한 개목걸이에 항거할 힘은 전혀 없다고 판단함이 타당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문적 성과인 논문의 저작 행위하여 자유로운  학자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보다 상위의 문제는 연구논문을 발간하지 못하면 업적부족으로 퇴출당해야 함은 이 바닥 시스템의 관행이다. 연구비를 수주하지 못하면 월급 벌레로 취급되어 가차 없이 시스템에서 배제당하고 마체계 속에서, 소외된 앵벌이처럼 그 바닥 시스템에서 내치듯 떠나야만 하연구들은 이유없이 졌다는 비애감을 호소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시스템의 괴리 속에서 연출 내지는 주연이나 조연으로 한몫을 가담해온 실적이 있으니 제 스스로 내구수명의 한계와 그 도래시점을 전혀 모르는바 아니다. 그래서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결코 모르지 않는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이런 시스템의 사례가 비일비재한 지금, 연구 중인 과학기술자 60% 이상이 6년 이내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통계는 과연 신뢰성을 담보하고 있을까? 

  이게 옳은 길이라고 판단하여, 학계나 연구소에 삶의 둥지를 마련한 과학기술자 중 절반 이상이 5~6년 이내에 의도와 달리 직업경쟁의 구도에서 사라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적당한 코스웍과 적당한 논문지도로 판에 박은 학위를 받고,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적당히 경력을 쌓은 잉여의 과학기술자들이 또 그 자리를 매우기 때문이다. 이것이 순환논리라면 아름답겠지만, 교체된 연구자들 역시 몇년 이내에 그 바닥을 반이상은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연구란, 개인적 성과 만으로 생활보장은 물론 학문적인 업적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독보적이론, 이를테면 전혀 연구되지 않았던 주제를 제외하면 선행 연구 이론이 없는 논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논문은 충분한 문헌 및 이론적 배경에서 태동하며, 논문의 독창성이란 뜬금없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행된 연구를 더욱 심화하고 혹여 논거에서 허점을  발견하였다면, 얼만큼 어떻게 그 연구를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켰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논문이 어떠한 점에서 기존의 학설을 뒤집었거나 아니면 한층 더 발전시켜 얼마나 독창적인가를 소명하기 위하여 선행 연구의 고찰은 필수요건이다. 여기에는 도덕적 차원을 포함한 연구자의 양심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양심이라...?  더러는 중복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에 본의아니게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먹이사냥 도중 함정에 빠져 허위적이는 개미에게 양심을 물어야만 하나?

  베리어 게이트 (Barrier gate) 를 추구하는 학계나 연구계를 불문하고 과학기술자 대부분은 업적만으로 정년이 보장되지 않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즉, 박사 후 연구원으로 살면서 적어도 생계문제를 고려치 아니하고, 하고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자 또한 절반의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연구자로서 신분 지속의 도구이자 성과인 논문에 목숨을 걸지만, 힘들게 완성한 논문의 수준을 평가하자면 그야말로 기가막힌다.

  연구의 당위성을 포괄하여 다수의 대중이 궁금해하던 질문에 어느 만큼 답하고자 했고, 어느 정도로 성실하게 답을 하고 있으며, 실험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서 증빙 근거는 타당한지... 질적 수준을 고려하여 발표된 논문의 수준은 대중의 관심보다 학계의 관심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그들의 논문은 인용과 피인용, 표절과 오마주, 그리고 패러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피곤한 일이지만, 이 바닥의 연구는 차마 언급이 부끄러울 정도로 허접한 쓰레기 논문들이 판을 치고, 재귀와 인용으로 점철어설픈 문장이 허다하지만 메스컴에서 이슈가 되지 않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미의 피가 주식인 개미귀신도 나름 약점은 있는 법이다. 명주잠자리 유충으로 알려진 개미귀신은 뜻밖에도 장님이라서, 파놓은 모래구덩이 함정에 빠져도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 공격하지 않으니, 이슬이 내려 모래의 점착력이 증가할 때를 기다리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 그러나 본능에 충실한 평범한 개미가 이런 노하우를 알고 있을리 만무하다.

  오늘은 또 어떤 착한 개미가 산채로 피를 빨리며 처참하게 당할까?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이라면, 개미의 처지가 가엾게 여겨지는 존재로 불쌍할수 있겠지만, 생태계질서와 생존이라는 거대 명제를 고려하개미귀신의 존재 역시 유의미 함은 물론이다. 불쌍한 개미를 구하려 그들의 천적을 제거할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설계를 진행한다면, 곤충의 한 종인 명주잠자리는 지구상에서 멸종하고 말것이 뻔하다.


PS: 더욱 적나라한 다음 편은 기대하지 마세요... 혹여, 당신의 영혼에 예리한 자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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