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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n 05. 2022

망가짐의 미학에 대하여

그대에게 추천하는 낭만과 방황의 제언

  낭만적 파괴는 순환 속성을 지닌다. 만들어 세우기를 전제하허무는 행위(파괴) 필수요건이 된다는 개념이다. 세상의 모든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허물지 않고 세우기만 할 수 있는건 컴퓨터 게임의 종인 심시티 뿐이다. 그 게임에도 재개발 프로젝트가 있었던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없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런한 어떤 만을 주입식으로 교육 받아온 탓으, 곧은 사상의 틀로 짜여진 완전무장의 상태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하여 왜곡된 흐트러짐은 곧 피해야만 하는 악으로 대접받기도 하지만 에헤... 살다보면, 그런 엉성한 판단은 위험천만한 편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현상은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며, 이름하여 착오법(Trial and Error)으로 칭한다. 알고 있다시피 세상의 지식에는 글로서 표현한 텍스트의 형식지와 도저히 글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노하우인 암묵지가 존재하는데, 전자는 교과서에서 배우고 후자는 경험이나 거친 방랑 또는 사정이 불분명한 방황을 통하여 터득한다.

  어쩌다 기회가 올 때면, 나는 후학들에게 무장해제의 차원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대가 진심으로 자신을 되찾고 싶거든, 우선 그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은 사뭇 부당해 보이지만 전혀 부당한 논리가 아니다. 세상에는 허튼 짓거리라는 게 없으므로, 제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 막바지의 위험수위까지 망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한 치 앞을 추렴하기도 힘겹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의도치 않게 재수가 없어 구렁창에 엎어질 경우라도, 다시 설 수 있는 백신의 효과를 보증하기 때문이다.

  늙어서 함정에 빠지면 젊은시절에 경험한 뼈아픈 착오를 기억하여 탈출 경로를 쉽게 판단커니와, 애시당초 착오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대부분은 바둥거리다 함정에서 나오지 못하고 자리에서 제 수명을 다한다. 젊은 시절 한 때 마약과 매춘빠져살던 스티브 잡스가 다시 설 수 있었던 이유를 살피자면, 청년시절 처절하게 망가져 본 착오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함이 무리는 아니다.

  가능한 한 하루라도 빨리 이 망가짐의 미학을 터득하지 못하면, 혹여 그대는 그대만의 고유한 삶을 타인으로 하여금 잔혹히 편집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대는 무수히 망가지고 무수히 절망하되, 아직껏 망가짐이 가능할 여지가 있는 그대 자신에게 깊이 감사해야 한다.

작가 이외수의 단상이며, 친필이다. 망가짐으로 따진다면 이 양반만큼 망가져본 사람도 드믈것으로 판단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수분해 하는 최적의 수단은 방황이다. 이는 자연과 조우인 까닭에, 자연으로부터 사사받을 수 있는 배움이기도 하다. 요컨대 장자가 언급한 무하유지향(절대 자유의 공간)의 뜻을 체험하려면, 무위의 자연과 온전히 어우러질 때 짐작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반듯하고, 그저 예쁜 동그라미나 각진 정형의 틀만을 강요하는 질서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터득하는 자유야말로, 견주어 비교되는 상대적 자유가 아닌 절대의 자유가 되는 이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으로서 절대의 자유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지치고 피곤한 방황을 끝내도 모를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숙제이자 철학적 명제이기 때문이다. 아 빌어먹을 철학같으니...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던 바다. 갇힌 것 같은데 어디를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에서 주인공이 읊었던 명대사)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건 그것은 그의 사정이다. 남이 나를 배제한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절대의 자유'이다. 실은 이것도 주관적 오판일 가능성이 있다. 절대의 자유란 함부로 해석이 쉽지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지의 판단과 알고 모름이란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설계인자가 된다.

  장자가 언급한 절대자유의 공간인 무하유지향(無河有之鄕)은 함부로 지정된 공간이 아니다. 사풍이 몰아치는 광야일 수 있고, 천둥 번개와 폭풍우가 난무하는 거목의 아래일 수 있다. 서러운 한바탕 꿈속일 수 있으며, 목적지를 분명히 정하지 아니하고 떠나는 방랑 일 수 있다.

  늙은이의 방랑이나 방황은 중증의 치매일 가능성을  의심해야 지만, 젊은이의 방랑이나 방황은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부시게 아름답다. 방랑이든 방황이든 목적이 있건 혹은 아니건, 망가짐의 다른 형태는 벗어남 ()으로 충분히 유효하다.  자! 그대는 무슨 테마로 어디에서 어떻게 얼만큼 방황하고 망가질 것인가?

  허파가 깨질만큼 망가지거나 절망할 기회의 틈이 없다면, 적어도 당신은 소멸과 생성의 의미까지 망실하고 있는 샘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인간에게 망가짐이란 없다. 세상의 말장난에 속지 말아야 한다.


"아주머니! 여기 이 테이블에 머리 망가지는 약 한병 더 주문 합니다."

"엇그저께머리가 좋아지는 약 이라면서요...?"

"망가지거나, 좋아지거나 공학적으로는 동등가 니다."

"그게 뭔 쉰소리 다요..?"

"망가져야 좋아지고, 좋아지려면 망가져야 하니까요."

"그게 말이요? 막걸리요..?"  (위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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