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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May 15. 2023

실존은 하되 본질은 없다

현상학적 방법론에 따른 공학의 본질에 대하여

  거대 담론이란 말 그대로 거대한 주제나 또는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 정보 및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의 형식을 의미한다. 사전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제’를 말하지만, 서면이나 의사소통을 포함하여 실로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학술, 포럼 또는 소셜 미디어와 같은 다양한 맥락에서 생산되고 유통될 수도 있다.

  이러한 담론은 특정 맥락의 사회적 환경에서 소통의 패턴을 연구하는 방법이므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심오한 학문적 성격을 빙자한 비틀어진 선전선동(프로파간다)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거대 담론은 추상적 추론의 수준이 높고 전개 논리가 단순하여 대단히 복잡한 현실적 문제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먹고사는 문제에 기인하는 실존적 고뇌에 처한 사람들에게 거대 담론이란 전혀 쓸데없는 미친 소리와 다름없다.

  따라서 일견 유용하지만 한계가 분명한 점은 현실의 문제가 갖는 상황이나 맥락의 구체성은  제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담론은 명시적 내용을 넘어서는 추가적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담론에 대한 독자나 청자의 이해와 해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현상학적 접근 방법에 따른 과학이나 공학도 예외는 아니다.


  실존은 하되 본질은 없다..? 이것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제시한 거대 담론의 개념이다. 무슨 개 풀뜯어먹는 소리처럼 괴이하게 해석이 될는지 몰라도, 이 말의 참 뜻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질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이 기어코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문제와 진정한 의미에 대한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존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도,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바르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판에 박힌 고정된 것이 아니며, 그 존재는 항상 변화하고 퇴행하거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존은 하되 본질은 없다"는 말은 인간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와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철학 사조에서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접근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1, 2차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이유없는 대학살의 처참한 현상학적 체험을 바탕으로 20세기 초엽 프랑스와 독일에서 등장한 철학적 운동이다. 이 철학은 인간의 삶을 다루는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문학, 예술, 심리,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이는 더욱 확장되어 유신론적 실존 또는 무신론적 실존의 접근 방법을 지닌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본시 자유로운 존재이며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 구속되어 있지 않으며, 자신의 방향성과 의미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뜻있게 살기 위해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하며, 이는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자신이 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아울러 고통과 죽음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강조한다.

  필연적으로 인간은 고통과 죽음을 마주쳐야 하는 존재이며, 이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할 수 밖에 없다. 실존주의는 자아와 타인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인간은 자아와 타인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비로소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실존주의는 추상적이고 이론적 논의보다는 실제적 삶에서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존함의 실천적 접근 방법을 취하여 자신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개선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조리의 문제와 인간의 존재의식에 대한 질문에 명백한 포커스를 두고 있다.

  유사하게 노자 철학도 인간의 삶과 본질에 대한 질문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자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자연의 이치(道)에 따라 행동할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개인의 내면적 삶과 관련하여 지극히 실존주의적 요소를 지닌다. 노자는 자연의 원리와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한 삶의 방식을 강조하였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삶을 분석하고 인간의 고통과 역설 등에 대한 문제를 직면하면서 인간의 존재를 단순히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노자는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다루며, 인간의 본질적 성격과 자연과의 조화를 지극히 강조하고자 했다. 노자 철학은 실존주의와 유사한 측면도 있지만, 무위 자연과의 조화로운 평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노자철학에는 현상학적 방법론에 근거한 심오한 죽음의 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명한 판단이었을지 모르되,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믿었고 순환개체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현상학적 방법론은 본시 실존주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자연철학에 근거한 과학이나 공학적 연구 방법도 예외 없이 현상의 본질적 특성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방법론은 경험적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중점을 둔다. 사실주의적 방법론은 선험적이거나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여 이론을 구축하고 검증하는 방법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현상학적 방법은 외부 지식보다는 내면의 경험에 대한 이해에 더욱더 중점을 두고 있다.

  현상학적 방법론의 핵심 요소는 판단절제 (epoché) 로서 이는 모든 사전적 가정과 선험적 지식을 일시적으로 제거하고, 순수한 경험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개인적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현상에 대한 순수한 관찰과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구자가 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일반적으로 꿈은 허황되다는 선입견이나 이전에 들었던 정보에 따라 이미 꿈에 대한 심리적 개념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판단의 절제를 통하여 연구자는 이런 개념이나 선입견을 제거하고, 꿈을 순수하게 성찰하여 꿈이 지닌 본질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이는 연구자가 꿈의 현상을 순수한 상태로 관찰하고, 이를 통해 현상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본질의 구성이 우선인 재료연구를 제외한 여타의 과학기술적 연구사례도 실존은 있거니와 본질은 없다고 판단함이 타당하다. 미완(未完)의 존재(存在)는 본질(本質)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완성체가 아니기에 본질일 수 없고, 언제고 판세가 뒤집힐 수 있는 과학이나 공학적 이론도 그저 실존이지 본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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