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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May 28. 2023

넥타이와 브래지어

전혀 쓸모가 없는 발명품

  가톨릭과 개신교 영주들 간의 패싸움이자 아브라함계 종교 분파 전쟁으로 알려진, 유럽의 30년 전쟁은 17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신성 로마제국과 중부 유럽을 무대로 벌어진 전쟁이다. 서유럽 최후의 종교 전쟁이자 서양 최초의 국제전으로, 나폴레옹 전쟁이나 세계대전과 흡사하게 근세 유럽사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대사건이다. 이 광풍의 30년 전쟁기간에 치장품인 넥타이와 브레지어라는 희대의 발명품이 출현한다.

  넥타이는 30년 전쟁 때 크로아티아 군인들이 목에 두른 수건이던 크라바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이 매고 다니던 크라바트에는 계급장이 달려있었는데, 이건 넥타이핀의 원조로서 파리 시민들의 관심을 샀고, 루이 14세가 이것을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 프랑스 귀족 패션의 일부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되, 지금도 이탈리아어로 넥타이를 크라바트라 부른다. 이는 목에 두르는 모든 종류의 스카프와 머플러의 시초가 되었고, 이후 여러 종류가 개발되어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교도소 내부에 있는 집행 장소를 그들의 용어로 넥타이 공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교수형에 사용하는 올가미식 밧줄의 꼬임방식과 넥타이를 동여매는 방식이 동일하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차이라고는 없이 판에 밖은듯 하나같이 똑같은 남성들의 정장차림에서 넥타이의 존재그나마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액세서리 중의 하나이다.

  반면, 거의 동시대에 태어난 여성용품인 브래지어는 멋스러움을 강조하는 액세서리가 아닌 여성용 필수품쯤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넥타이건 브래지어건 둘 다 효용성은 제로(0)에 근접하는 기묘하고 괴이한 발명품이라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성들이 넥타이를 착용할 때 나타나는 폐해는,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할 경우와 동일하게 혈류장애 및 혈압유발, 발육장애나 종양 등이 생길 수 있으며, 특히 브래지어의 경우에는 유방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비록 세서리일 망정 설계의도가 전혀 없는 넥타이나 브래지어는 착용해도 문제, 착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한다. 착용하면 답답하고, 착용하지 않으면 모가지가 허전하거나 가슴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기표현이나 치장의 멋스러움을 이유로 사용하지만, 착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착용하기 전보다 더욱더 신체의 건강악화에 직결될 따름이다.

  브래지어의 경우 오랫동안 노브라 상태로 있으면, 유방의 모양새를 잡아주는 인대에 걸리는 집중하중이 커지므로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시기가 빨라지고, 최종적으로 더 많이 처지고 벌어진다는 의견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브래지어는 바로 이러한 유방노화 현상을 결코 지연시키지 못한다는 실제의 연구 결과가 많다.

  참고로, 브래지어를 만드는 메이커에서는 브래지어의 착용으로 하여금 가슴 처짐을 예방하거나 지연시키는 기능이 전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가슴 처짐은 인간의 노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이며, 브래지어 착용으로 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브래지어의 용도는 활동 중에 가슴이 흔들림으로써 발생하는 불편함과 통증을 경감시켜 주고, 유방의 전체적 형태를 맵시 있게 해 주는 것이라 한다. 판매 전략상 메이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정보를 스스로 자신들이 나서서 홍보하는 이유는, 실제로 여러 번 이와 관련한 과대광고로 집단 소송이 있었으며 일부 소비자 단체로부터 패소한 사실 때문으로 파악된다.


  프랑스 브장송 대학 연구팀이 1997~2012년까지 18세에서 35세 여성 330명을 대상으로 한 추적조사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학적, 생리학적, 해부학적으로 여성의 가슴이 브래지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오히려 가슴이 더욱 처지는 효과만 있을 뿐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이 연구는 가슴 처짐의 중요한 설계 변수인 가슴의 크기를 통제하지 않은 점, 연구 결과가 논문이 아닌 보고서 형식이며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 아니라 들고 다녀 부끄럽지 않은 주간ㅇㅇ이나, 선데이ㅇㅇ 같은 옐로 메거진 매체에 실렸다는 점, 데이터의 보편적 적용 여부에 대해서는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말미에 꼬리를 흐리며 언급한 점 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런 한 착용의 단점들 때문에 브래지어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늘 해오던 버릇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아무튼 지금의 시대에 이르러 착용의 효용성 논란으로 하여금 브래지어는 의류도, 보호대도 아니고 그저 장신구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탈타이, 탈브라 바람이 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려입지 않은 듯 편안한 패션이 대세가 되자 여성들의 속옷도 예전과 비하여 지금은 사뭇 달라졌다. 브래지어를 벗어던진 여성, 가슴을 덜 압박하는 노 와이어 브라나 브라렛으로 바꾸는 여성이 늘고 있다. 브래지어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안함이지만, 많은 여성들은 브래지어 착용 거부 이유를 여성의 해방과 페미니즘의 자유표현으로 간주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혀 쓸모없는 발명품은 콕! 집어, 넥타이와 브래지어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이로움이란 전혀 없고, 사람들에게 매우 해로운 액세서리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의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이와 경제적 차원의 거래 규모가히 천문학적 수준이다.

  건강상 치명적인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는 담배나 마약의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이해 불가의 현상은 결코 아니다. 그게 아무리 해롭다고 한들 돈이 안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의지와 표상이라는 자기표현에 제 수명을 저당하는, 그러니까 수많은 인간의 설계결함 중에서 매우 두드러진 부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적어도 제 스스로 실존주의자라고 믿고 있는 이들은 잡히기라도 하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넥타이나 성가시고 귀찮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알아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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