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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May 04. 2023

친절한 금자씨의 두번째 살인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게 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은 영국 런던에서 출발하여 튀르키에 이스탄불까지 운행하는 장거리 열차를 소재로 전개되는 추리소설이다. 초호화판 증기기관 열차의 폐쇄된 객실을 무대로 작가는 살인 사건을 구상했으며, 탐정을 등장시켜 기이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중 순항하던 오리엔트 특급은 폭설로 유고슬라비아 어디쯤에서 철로가 막히고 - 유고 연방이 해체된 지금은 여러 독립국으로 분할되어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는 사실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와중에 승객 한 명이 12개의 자상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국제법에 따라 열차의 정차국 유고슬라비아 경찰이 올 때까지 살인 용의자 12명을 심문하기로 한 주인공은 승객들의 증언을 통하여 살인범을 색출하는데...

  진상이 드러난 것은, 알리바이를 서로 품았이 한 승객 전원이 범죄의 직간접 가담자이며 또한 12명 전부가 범인이라는 내용이다.

  같은 피해를 입은 다수의 범행자가 원수를 한 번씩 찔러 잔인한 복수를 한다는 장면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떠오르는 이유는 박감독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플롯을 오마쥬 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철도를 이용하여 장거리 노선을 여행할 경우-특히 야간에 운행되는 열차라면-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크나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더욱이 행선지가 국경을 통과하거나 국가간 공유노선을 경유한다면 지정 좌석을 꼼꼼히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탑승한 열차 각 량의 행선지가 저마다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3번 량은 브뤼셀이 종점이고, 4~5번 량은 뮌헨, 6~9번 량은 또 어디로 가고... 개략 이런 식인데, 이것은 유럽식 횡단열차의 일반적인 운영방법이다. 구입한 티켓의 배정받은 내 좌석에 마음씨 고와 보이는 할머니가 떠억! 자리를 점유하고 앉아 졸고 있다거나 하는 어찌어찌 불가피한 사정에 처하는 난감할 경우가 있다. 이때 자리를 비켜달라는 요청이 껄끄러운 이유는 노인을 공경하는 한국인의 정서 때문이다. 개략 난감한 이럴 경우 텅텅 빈자리가 많은 이웃칸으로 용감하게 자리를 옮겨 곤하게 한잠 자고 일어나면? 내가 탄 철마는 생뚱맞은 나라의 엉뚱한 땅을 쌩쌩 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순전히 경험담을 쓰고 보니 씁쓸하고 껄끄럽다.

  언젠가 파리 동역에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일반객차와 침대차가 섞여있는 오리엔트 특급을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신나게 잘 가던 열차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역에서 꼼작하지 않기에 지루한 나머지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종착역이라고 하는데 아이고... 그야말로 한밤중에 날벼락을 맞아 오도 가도 못하는 난감하기 짝이 없던 경우도 있었다.

< 파리-빈 구간의 오리엔트 특급 야간열차 노선 >

  지금은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간은 고속열차 도입으로 운행이 상당수 축소되었고, 그나마 승객의 수요가 종전 같지 않은 까닭에 수지를 맞추기 어려웠는지 역사와 전통에 빛나던 특급열차는 폐지되어 파리-낭시-스트라스부르 구간은 TGV로 대체된 것으로 안다. 근간에는 프랑스 국철이 횡단 특급열차의 편성에서 빠지고 전반적인 운영을 오스트리아 연방 철도인 OBB가 EN468/469의 운행을 하고 있다는 올드 뉴스가 있었지만 승객의 감소에 따른 적자운영을 이유로 2009년을 기점으로 운행이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드디어 2021년 12월 노선폐지 이후 정확히 12년 만에, 파리-빈 구간의 오리엔트 특급 야간열차 운행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차량 편성은 오스트리아 연방철도의 신형 Nightjet 객차를 사용하며, 열차 고유번호는 2009년에 폐지되었던 동일한 번호인 468/469를 사용하여 운영되고 있으니 유럽 여행 시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물론 소주 한 병과 더불어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원작 추리소설을 읽어가며...

  생각보다 유럽에서 한국산 병소주는 더럽게 비싸니, 대체 준비물로 팩소주와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물 책을 챙겼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오리엔트 특급 야간열차 일등석의 가격이 워낙 만만치 않음을 감안해야 할 일이다.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나머지 대책없이 삼등석을 선택하게 되면? 정말로 이유없이 졌다는 느낌이 들거나 실존적 의미를 비싸게 경험할 수도 있다. 


  친절한 금자 씨가 468/469 열차에 탑승하게 되면, 혹여 잘츠부르크나 린츠역 어디쯤에서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게 뻔하기(?) 때문에 한국인 탑승객 금자씨와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열차를 추천하지 않으며, 혹여 동명이인 금자 씨가 이 열차를 이용할 경우 오스트리아 경찰에게 체포당하지 않으려면 개명을 하거나 '친절하지 않은 금자 씨'로 처신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듯하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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