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경 Mar 06. 2023

남는 것 없는 몸부림

  우리들의 사고(思考)는 우리가 겪어온 모라토리엄의 세월 속에서 얻게 된 보증된 경험이나, 또는 알게 모르게 누군지에게 학습받았던 가르침과 앞서간 현자들이 남긴 기록의 산물임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모방과 편집이 전부라는 뜻이다. 이 말은 진정한 개인의 사유(思惟)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무릇 어떤 종류의 창작이건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터득한 깨달음의 보상이며, 이로 하여금 획득하게 된 고유한 조이자 표현이며 점유물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이성과 가치관 그리고 사상이나 관념 따위도 냉정히 분석해 보면, 오래전에 죽어간 이름 모를 어떤 현자의 말과 앞서간 경험자의 기록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열매나 뿌리는 고사하고 심지어 가지나 줄기마저 누군가에 의하여 반복 답습되었거나 혹은 편집되어 덧칠되고 벌충 되기도 했던, 그저 원본을 훼손하 결여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고대의 신화를 짜집기하여 편집도그마류(종교서)이 그렇고, 느낌의 질투사상의 배반을 거듭한 기록(철학서)이 그렇다. 이는 비교를 일삼아온 역사적 근거 들먹이지 않아도 쉽사리 증빙이 가능귀납적 사실이다.


  젊은 날(물론, 지금도 젊지만 더욱더 젊었던 날을 의미한다.) 이러한 답습과 모방된 창조의 극복은 도저히 불가한 성찰이며 곧 결여태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어있던 나는 과학기술자로서 단 한 줄의 문헌참조를 허용치 아니한 불후의 논문 한편을 남기고 싶어 하였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형이상학 내지는하학을 불문하고 그런 짓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요원한 피안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부터 무모한 생각의 구체화에 나는 거듭 치를 떨어야 했다. - 그래서 그런지 과학과 공학에 근거한 잡문이나 허튼 소설 따위를 끄적거릴 경우라도 반드시 문헌참조의 형식을 차용한 적이 있었다. - 참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학문에만 국한된 사실이 아니라 회륜하는 인류사의 자잘한 발견이나 발명 사건을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 두루 해당한다는  더욱 나를 참을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 파릇한 젊은 날의 대부분은 재수(在囚)된 숙명에 포박당한 나의 진정한 사유를 건지려는 몸부림의 연속이었는지 모른다. 어느정도 세월을 더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따위 거지 같은 몸부림보다는 그럴싸한 폼세로 목숨을 버리는 자살이 오히려 쉬웠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적도 있다. 별것도 아닌 본연의 사유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그야말로 남는 것 없는 헛장사였다.


  그럼에도 별다른 뜻은 없지만, 내부 에너지를 지닌 인간으로서 있는 힘을 다하여 끝내주게 살아가노라는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때의 나는 누군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을 수 있겠지만 정작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심란했었고, 불편했으며, 마냥 걷고있던 익숙한 길을 잃어버리고 도시의 모퉁이를 헤매인 적도 있었다. 따질것도 없이 행복이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이 허튼 역설은 아니었음에 그저 소소한 기쁨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기쁘게 살아가노라는 표현이 유효할 것이다.

  이룩하고자 하는 완전태를 꿈꾸며 피곤에 지친 불완전태로 허위적이느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란 결여태의 삶이야 말로 적나라하고 순수한 인간적인 상태임을 깨닳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수표가 지폐의 결여태이듯, 나의 사유는 내가 누리는 자유의 결여태 일지도 모를 일이다. 자유...?

이전 13화 그대에게 헛되지 아니한 희망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