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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May 25. 2022

1987년의 추억이 통째로 배달되다

내 꿈이 작가가 된 순간

드디어 왔다!

두근두근...

설마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

30년이 넘은 그 책을 한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구매했다.


초등학교 4학년,

사춘기에 막 들어섰던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책!

쉘 실버스타인의 [배낭 속의 우화]이다.

이 책은 정식으로 발매된 것이 아닌 [마드모아젤]이라는 잡지 별책부록으로 받은 책이다. (정말 소중하게 보관했었는데 이사하면서 분실되어 무척이나 속상했었다.)


이 책이 왜 초등학생이던 나를 사로잡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일단은 작가인 *쉘 실버스타인의 유머 코드가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의 글을 보고 나니 글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라는 직업의 문턱이 내 눈높이로 낮춰져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난 이 책을 매일 읽고 또 읽었다.  

지겨울만했는데도 매일 새롭고 재밌었다.  

책을 실컷 읽고 나서 어느 날부터 책 뒤에다 나만의 시를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압정이 나를 찌르네... 뭐 이런 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어렴풋이 글 쓰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때부터 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잊어버리고 묻어 버렸다. 그리고 현실과 타협했다.  

이과에 공대 출신이지만 사실은 난 전형적인 문과 타입이었다.  나를 꾹꾹 누르고 대학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가지 않은 길처럼 항상 마음속에 작가에 대한 아련함이 남아 있었다. 프로스트와 달리 나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배낭 속의 우화]는 그 후에 [골목길이 끝나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발매되었다. 번역은 다른 사람이다. 같은 책인데 번역이 다르다고 정식 발매도 안된 책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몇몇 포인트가 있다.


아래 시를 보면 원작은 같을 텐데 번역이 조금 다르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선 제목을 '내 국'이라고 했고 [배낭 속의 우화]에서는 '나 찌개'라고 표현했다. 내 기준에서는 나 찌개라는 표현이 좀 더 재밌고 위트 있게 느껴진다.

여덞째 줄에 '내가 잘하고 있나 맛도 볼 거야'는 '잘 되어 가는지 자주 나의 맛을 봐가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재밌다.

(번역을 뒤로하고 재료가 없어 나를 가지고 찌개를 끓인다는 작가의 발상 자체가 참 신선하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버전
배낭 속의 우화 버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아니라고 하지 않는 풍적'에서는 그 차이가 더 나타난다. [배낭 속의 우화]에서는 백파이프를 '풍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린 나이다 보니 풍적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생소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고 풍적이라는 발음도 리듬감 있게 느껴져서 좋았다.


거북이가 풍적을 끌어안는 부분에서도 차이가 느껴진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선 '삐이이이익'이라고 표현했지만 배낭 속의 우화 버전에서는 '아우가아'(아우가!)라고 번역했다. 단순한 소리 번역과 의미를 넣은 번역이 차이인 것 같다. 원작을 못 봤기 때문에 어떤 게 맞는 번역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는 '아우가아'라고 표현한 게 너무 웃겨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어른이 되어 이 시를 읽어보니 연애할 때 이 거북이 같은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해석하는 사람??)


골목길이 끝나는 곳 버전
배낭 속의 우화 버전

아래는 '마술'이라는 시이다.

아마 원작에는 사람 이름이 영어 이름이기 때문에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산드라', '에디'처럼 원작에 있는 이름을 그대로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배낭 속의 우화]에서는 '순이', '철이', '민이', '섭이', '돌이'등 우리 정서에 친근한 이름으로 과감하게 바꾸었다. 역시 이런 부분이 내 맘에 쏙 들었던 것 같다. 다시 보아도 재미있는 시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버전
배낭 속의 우화 버전

[배낭 속의 우화]를 다시 만져보고 책장을 넘기니 1987년의 기억이  통째로 되살아났다. 그때의 나는 배낭 속의 우화에 빠져있었고 진심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람에게는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물론 다양한 연령대에 그런 순간들이 올 수 있겠지만 그 때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일찍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 때 말이다.(나의 경우처럼...)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연극을 하고 난 뒤 친구들이 환호하는 순간에 이런 일을 평생 하고 싶다고 느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미술관에 갔다가 한 그림에 사로잡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기타 연주 영상을 우연히 보고 빠져들어 몇 달 동안 연습하면서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 대부분 나를 사로잡은 그 분야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은 부모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고, 스스로 자기가 매료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아니면 너무 막연해서 용기 내지 못하고 애써 외면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는 한 돈을 벌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다.  난 그 정도까지는 못된다는 판단을 벌써 어릴 적부터 한 것 같다.  


초4 때 품은 꿈을 꾹꾹 누른 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정신없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냈다.  

수능을 본 후 나의 진로는 하루 만에 정해졌다.  

시험이 끝나고 쉬면서 TV를 보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니 성적에 맞는 곳은 oo대학교 oo과 니 원서를 쓰자고....  

그래서 난 졸지에 공대생이 되었다.  

이 얼마나 엄청난 괴리인가....


최근에 초3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한 명은 게임 디자이너가 되어 닌텐도에 취직하겠다 하고,

한 명은 양봉업자가 되겠다고 한다.  

생각 있는 녀석들이다.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쉘 실버스타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책은 다른 동화책이나 시처럼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조금씩 그의 생각에 스며들게 한다. 게다가 발상도 너무 재미있다. 책에 있는 그림은 그가 직접 그렸다. 그의 글만큼 그림도 너무 사랑스럽다. 그의 책은 어린이들이 보기에도 좋지만 어른들이 보면 더욱 감동을 느끼는 것 같다. 언젠가 쉘 실버스타인처럼 어른들을 위한 동화나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초4 때부터의 꿈이다.


*두 권의 책에 대한 번역 비교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분석이다. 어떤 번역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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