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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Jul 02. 2022

나는 명문대를 나왔다

인생은 명문대가 정답은 아니다

나는 명문대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는 내신 1등급이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애엄마다.


MBTI가 I형이라 그런지 평소 나에 대한 자아성찰을 깊게 하는 편이다.

오늘 갑자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정의해봤다. 위의 4줄이 다 인 것 같았다.

그 순간, 명문대가 도대체 인생에서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까지는 학교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고 친구들도 나를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었다.

학교에서의 그러한 나의 위치를 즐기며 더욱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물론 수능을 망치는( 몇 문제 밀려 쓰기 ㅠ) 바람에 원하는 그곳(S대)에는 못 들어갔지만

그래도 남들이 꿈꾸는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의 방황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과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원래 수학을 싫어했다. 특히 계산이 느렸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반에서 한 10 몇 등 정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처럼 스스로 각성을 한 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사립으로 장학금을 많이 주는 학교였다. (전교 30등까지 장학금을 주었으니 많이 주는 편이었다.) 

처음엔 장학금을 타서 옷이나 내가 사고 싶은걸 사려고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를 눌러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엄청 경쟁적인 사람이었다.)


이전에 포스팅했듯이 나는 전형적인 문과 성향이었다.  평소 글 쓰는 것 좋아하고 감수성도 예민했다. 하지만 고2가 되기 전 문/이과를 정할 때 난 이과를 선택했다. 주변에 성적이 좋았던 친구들이 전부 이과를 택했기 때문이다.

문과를 택하면 왠지 공부 못하는 부류가 될 것 같았다. 정말 안타까운 판단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를 하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없었고 전적으로 나의 선택을 믿어 주셨지만

인생을 돌이켜 보니 이때마저 개입하지 않으셨던 것이 아쉽긴 하다.


이과에 가니 수학이 문제였다.

고1 때도 수학이 난관이었다.

나의 온 힘을 끌어모아 독하게 공부했다.

내 인생 최고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문제집의 답지를 감추고 한 문제가 일주일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해결했던 것 같다.

자면서도 문제를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수학 성적이 쑥 올라갔고 난 그 후 1등급을 유지했다. 수학에 재능 없는 사람도 독하게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대학에 입학하니 부모님이 너무 기뻐하셨고 친척들도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부터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당연하겠지만 노란 머리에 날날이처럼 보이는 애들도 다들 똑똑했다.

누가 시험에서 1등을 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쫄렸었다.

(S대에 갔으면 자괴감이 더 심했을 것 같다.)

자존감이 쑥 내려갔다.

게다가 관심도 없는 분야를 공부하려니 우울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올라갔는데 오히려 불행해졌다.


좋지 않은 평점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졸업하면 대기업에서 줄을 선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IMF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겨우 입사해서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막상 회사에 들어가니 그곳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명문대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정치, 인맥... 특히 유리천장이 높았던 것 같다.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여자 임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회사의 각종 부조리함과 이중인격적인 사람들을 보고 치가 떨렸다. 회사에 뼈를 묻을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삶의 목표가 없어지고 무기력해졌다.


고등학교 때는 명문대를 목표로 살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대기업 입사를 바라보고 살았다.

그런데 그 이후는 미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 후 여러 방황을 거쳤다. 친구들에게 불리던 별명이 '방황의 아이콘'이었다.  갑자기 MBA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뒀다가 약대 편입하겠다고 편입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회사를 들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경단녀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그냥 놀고 있는 것이 불안하여 블로그 활동을 했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부동산 투자나 재테크에 관심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내가 전에 어울렸던 사람들과는 좀 달랐다.


소위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로 전형적인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았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무엇보다 인상적이 었던 것은 그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를 파고들며 끊임없이 노력했다. 10년 동안 꾸준히 포스팅 한 사람도 있고, 책을 수천 권 읽고 리뷰를 쓴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런 노력들은 그 사람을 한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 주었고 책도 내고 강의도 하고 덩달아 부도 얻었다.


그동안 살면서 마주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제야 깨달았다.

난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주체적으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채 경주마처럼 달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던 거 같다. 한마디로 철이 들었던 것이다.


그 후 몇 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며 그 사람들과 교류를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블로그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블로그에서 교류하던 한 사람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 사람은 지난 10년간 블로그를 꾸준하게 쓰고 재테크 등을 열심히 해서 책도 여러 권 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은퇴했다고 한다. 매년 목표를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공표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을 포스팅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책으로 쓰고 강의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고 있었다.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았던 친구였다.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무엇이 인생의 정답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혹은 못 들어갔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물론 인생의 출발점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겠지만 그 우위가 끝까지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남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판단력과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목표의식, 그것을 매일매일 실천하는 성실함, 긍정적 삶의 태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한 중요한 열쇠인 것 같다.


자녀들을 명문대 보내기 위해 지금도 많은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학원을 몇 개씩 보내고 연산과 문제집 폭탄을 매일 아이에게 던지고 있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부모는 공부를 직접 지도하기보다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가치관 교육을 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한 독립된 인간으로서 사회에 나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삶의 가치와 지식들, 경제관념, 재테크, 부동산,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목표를 세우고 이루는 방법들 말이다. 그러한 가치교육을 받은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설사 명문대에 못 간다 하더라도 인생의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교육하겠다고 오늘 남편과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본보기가 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실현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1년 안에 책을 내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공부하라고 100번 잔소리하는 것보다 그것이 바로 부모가 해야 할 살아있는 교육인 것 같다.


** 이 글은 잘난척하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학창 시절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바보같이 입시위주의 교육만 받은 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 방황을 하며 깨닫게 된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제발 대학입시위주의 교육이 하루라도 빨리 바뀌면 좋겠다. 연산은 계산기가 하고 역사 연도는 인터넷 치면 다 나온다. 제발 이런 교육 그만하자.... 우주처럼 무한한 아이들의 가능성이 무의미한 입시교육 속에 시들어가고 있다. 도대체 미적분 한 문제가 행복한 인생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와우, 이글이 다음 메인에 떴네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힘이 납니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흔들리지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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