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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Sep 14. 2022

우리 회사니까요

드라마 '미생' 다시 정주행 후

몇 년 만에 미생을 다시 정주행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직장인이었을 때였고 이번에는 직장인 아닌 상태에서 보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드라마인 데다가 내가 다녔던 회사 주변과 서울역의 낯익은 빌딩이 나와서 그런지 반갑기도 하고 더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집에서 살림하는 주부이지만 나도 한때는 그들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드라마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주인공 장그래는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다 실패한 사람이다.

운 좋게 낙하산으로 대기업 상사에 인턴으로 들어오지만 입사했을 때부터 인턴 동기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신입에 뽑히지만 계약직 사원이다. 신입으로 들어온 다른 동기들은 다들 명문대에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며 정규직 직원으로 입사한다.


다행히  장그래는 영업 3팀의 괴짜 팀장인 오상식 과장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로 회사에 큰 공까지 세우며 활약을 펼치지만 결국 모두가 그렇게 바랬던 정규직 전환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번에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되면서 한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건 '우리'라는 단어이다. 특정한 무리를 구분 짓는 날카로운 단어이기도 하면서 같이,  하나로 묶어주는 부드러운 느낌의 단어이기도 한 묘한 단어이다.


이 드라마에는 '우리'라는 단어가 두 가지 의미로 나온다. 첫 번째 '우리'는 장그래와 같이 인턴을 했다가 스펙이 좋음에도 입사하지 못한 상헌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입사 실패를 억울해하며 장그래의 동기인 장백기에게 하는 말에서 나온다.



"장백기 씨도 이제 솔직해 보시죠,
장그래 씨가 '우리'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우리'란 무엇을 의미할까?

명문대 출신에 고 스펙을 가지고 대기업에 들어갈만한 사람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첫 번째 이 드라마를 봤을 땐 이 '우리'라는 단어를 별로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난 당연히 그 '우리'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나 역시 계약직 사원들을 그들로 보면서 명절 때 나와 다른 선물을 받는 게 익숙해져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퇴사를 하고 주부가 된 후 지금 다시 그 장면을 보니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다.

왜 유치하게 명절 선물 따위로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드라마의 장그래는 식용유 세트 다른 동기들은 스팸 선물세트를 받는다)

도대체 는 '우리'누구고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귀한 사람이다. 학벌과 스펙만으로 한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


 다음의 '우리'는 장그래의 입에서 나왔다.

장그래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영업 3팀은 팀원의 비리로 문제가 있어 홀딩했던 사업을 다시 진행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장그래는 전형적인 커리어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자유롭고 파격적인 의견을 자주 낸다. 오성식 팀장은 장그래가 정답이 아닌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장님까지 참석한 회의로 판이 커진다. 사장은 틀을 벗어난 발표 내용에 아주 만족하며 아이디어를 낸 장그래에게 왜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냐고 물어본다. 장그래는 깊이 생각한 후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그건 우리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임원진과 사장은 장그래의 대답에 순간 멍해졌지만 오랜만에 듣는 우리라는 그 단순한 말에 감동을 받게 된다.


장그래가 사용한 의 '우리'의미는 첫 번째 언급한 '우리'와는 결이 다르다.

장그래는 비록 계약직이지만 자신을 기꺼이 받아준 회사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우리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극 중에 장그래가 회사 건물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장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이러한 그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난 왜 직장생활을 하며 장그래처럼  나를 선택해준 회사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장그래가 회사 건물벽을 손으로 쓰다듬는 장면


장그래가 언급한 '우리' 에는 구별이 없다.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회사의 모든 구성원을 묶어주는 우리이다. 내 귀에는 그 우리라는 말이 우리 가족과 같은 따뜻한 말로 들려왔다.

(아마 장그래가 회사에 이러한 애착을 가지게 된 이유는 오성식 팀장이 타 팀 팀장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장그래를 대신하여 항의하며 "우리 애가 피해봤잖아" 하고 장그래를 우리의 범위로 받아준 이후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난 회사를 퇴사하며 그 허울뿐인 '우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아직도 첫 번째 '우리'와 두 번째  '우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있다


내가 첫 번째 우리에서 벗어나 보지 않았다면 아마 아이들에게도 나처럼 되라고 푸시했을 것 같다.

하지만 회사를 오래 다녀보니 결국 자신 정체성을 찾고 가치관을 확립하지 않는 한 그 '우리'안에 속한다 해도 여전히 갈증은 풀리지 않는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위치에 올라서니 그 위에선 또다시 계급이 나눠졌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난 움츠러들고 목적의식이 사라졌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무능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드라마에 나왔던 것처럼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정치와 줄이 분명 존재했다.


나중에 부모가 되어보니 다들 가족을 위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천성적으로 정치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팀장이 시켰음에도 오성식 과장같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거절하거나 박 과장처럼 협력업체의 사정을 봐주며 내가 피해를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점점 무력감이 더 커져갔다. 첫 번째 '우리'를 통과해도 수많은 '우리' 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처럼 진정한 '우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오성식 과장이나 장그래 같은 사람은 아마 회사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진정한  '우리' 가치를 내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야겠다.

절대로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지 말라고 가르쳐야겠다.

그리고 어떤 위치의 사람이든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가르쳐야겠다.


명문대 출신이든 아니든 대기업이든 아니든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우리는 모두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우리'에서 그들의 범위로 넘어갔듯이 언제든지 그들이라고 단정했던 사람들이 '우리'의 범위로 들어올 수도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언젠간 닥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 공평하게 놓여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가치는 결국  '함께하는 우리'가 아닐까?


*우리라는 단어가 헷갈릴 것 같아 색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우리: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짓는 의미로서의 우리

우리: 함께한다는 의미로서의 우리


*미생은 몇 가지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상당히 고증(?)이 잘된 드라마 같습니다. 우리 회사에 있었던 캐릭터가 전부 들어 있는 것 같아 놀라웠습니다. 어느 회사나 분위기, 구성원이 다 비슷한가 봅니다. 특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전무 캐릭터 압권입니다. 오상식 팀장 같은 사람은 아마 존재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있더라도 승진 못할 스타일 이죠. 임원에게 들이대고 팀원에게 인기 많은 팀장은 대체로 살아남기 힘들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팀이 있다면 다시 한번 제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열정적으로 일해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구직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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