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빛창가 Nov 29. 2022

상무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옛 회사 동료의 임원 승진 소식을 접하며

매년 이맘때쯤 임원 승진 기사가 나온다. 퇴사 전 회사의 승진 기사를 보며 혹시 아는 이름이 있나 살펴보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될 사람이 되었구나'


기사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이름이 올라온 그들은 임원이 될만한 사람들이었다. 같이 일할 때 일을 깔끔히 잘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으며, 상사들에게도 인정받던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워커홀릭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늦게까지 일하고 일을 시키면 믿음직스럽게 처리하고 팀장이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팀원이었던 것 같다. 그래... 이런 사람들이 임원이 되는 거겠지.


몇 달 전 그 이름 중에 한 명이 신문기사에 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깜짝 놀랐었다. 같이 일할 때 나름 꽃미남(?)이었던 그 모습이 폭삭 늙어 있고 머리엔 새치가 가득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등 뒤로 그동안 겪었을 스트레스와 고뇌가 느껴져 마음이 짠했었다.(경단녀인 내가 그를 걱정하는 것은 사치지만...)


대기업 임원이 되면 누리는 것이 많다. 자녀 학자금의 단위 그리고 범위도 넓어지고 기사 딸린 자동차 지원에 월급 외의 수입(스톡옵션 등)도 많은 것으로 안다. 이렇게 본인과 가족들이 체감하는 생활 수준의 퀀텀점프를 느끼고 나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적성에도 안 맞는 온갖 술수(?)등을 쓰면서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점점 변해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예전에 한참 인기 있었던 드라마 '하얀 거탑'이나 드라마 '미생'의 실사판같다.  다 큰 어른들의 유치한 방법을 옆에서 지켜보며 혀를 내 눌렀던 적이 많았다. 아니..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뭘 위해서...



꽃들에게 희망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동화책을 한 권씩 나눠 주셨다.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다.

책을 주시면서 지금은 이해가 안 가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셨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호랑 애벌레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거대한 애벌레 기둥을 발견하고는 자기도 위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올라가다가 노랑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두 애벌레는 기둥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내려와 마음껏 풀을 뜯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호랑 애벌레가 애벌레 기둥의 끝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고 결국  그 기둥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홀로 남겨진 노랑 애벌레는 우연히 고치를 만드는 늙은 애벌레를 만나게 되고, 자신도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만든다. 반면에 호랑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으면서 기둥 끝에 서지만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고 이런 애벌레 탑이 여러 개 있음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때 노랑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나타나고 호랑 애벌레는 노랑나비를 따라 고치를 만들고 자신도 나비가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애벌레들이 저 기둥에 도대체 왜 올라갈까 궁금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알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결국 허무함 외에 아무것도 없다. 물론 임원이 된 모든 사람들이 허무한 것을 좇는다는 뜻으로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임원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거는  위험하다는 을 말하고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항상 듣는 말이 가정과 일과의 밸런스를 잘 맞추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높은 지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희생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진정한 자신의 꿈을 잃고 단지 높은 곳으로만 향하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결국 그 끝에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만나고 허무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나 또한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가치들을 쫓아 그 기둥을 올라가다 다른 애벌레들에게 밟혀 여러 가지 내상을 입고 그 기둥을 내려왔다. 그 후 근사한 나비가 되지는 못했고 아직은 고치 안에 있는 것 같다. 대신 고치 안에서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 내가 좋아하는 건 결국 그거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만으로 올해는 값진 한 해라고 생각한다. 비록 회사라는 기둥에선 내려왔지만 언젠간 나도 꼭 번데기를 찢고 나와 나비가 될 것이다. 아주 멋진 나비가 될 것이다!


이번에 상무가 된 분들, 축하합니다.
그 기둥의 끝만 보지 말고 멋진 나비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AI가 나보다 글을 더 잘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