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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 말 이어도 꿰어야 보물

의학에 있어서 지식 융합의 필요성

by 정희섭

2년 전 부산으로 자전거 여행을 가던 중 박진고개를 낑낑대며 올라 내리막을 쌩하게 내려오면서 힘들었던 오르막의 고통을 내리막의 쾌감으로 날렸지만, 평지에 이르러 페달을 밟는 순간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체인의 사이드 핀 이 빠져 버렸었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던 일이 장거리 여행을 틈타 봇물 터지듯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자전거도 나름 의식을 갖춘 녀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지난 100m 아스팔트 길을 두세 번 훑었으나 조그만 핀 이 보일 리 만무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부분에서 세세한 부품과 장비들이 어울려 하나의 정상적인 자전거 작동을 보장합니다.


집안에만 있으면 우리 집이 우리 동네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우리 동네에만 머물면 시나 군 단위에서의 지리적 분포를 알 수 없으며, 유추하면 끝없이 존재하는 막이나 껍질 속에 안주하게 되면 더 큰 세상을 모르는 체 살아가기 쉽습니다.


한의학이나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의 현상을 짧은 범위에서 찾고 이해하려고 해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뒷산에 올라가거나 위성에서 바라보면 코앞의 개울물이 어디를 향하고 종착점과 시작점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야를 넓히면 얼마든지 해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시계 속 톱니처럼 모든 것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시적인 것은 단지 시침이나 분침, 초침이지만 그 내부에는 여러 톱니들이 정밀하게 맞물려 작동한 결과이지요.


인체도 증상이라는 표현은 시계의 분침과 같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그 속에 숨어 있습니다.


시계의 오작동은 시곗바늘에 있지 않고 내부의 문제에 의한 결과물인데 이를 알지 못하면 억지로 분침을 돌려 바로잡으려 하는 황당한 치료를 하게 됩니다.


시곗바늘이 있는 표면과 톱니들이 있는 이면은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융합을 통해서 정상 작동하는 시계로 태어납니다.


인체도 의학이라는 표면과 다른 영역의 학문이 구성하여 표현됩니다.

생명이나 무생명 모두에게 통용되는 열역학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 천체나 우주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법칙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의학 공부만으로는 의학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증후군이나 원인 불명의 질환이 존재하고 심지어는 감기조차도 제대로 치료할 약이 부존한다는 것이 그 예일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현대 과학의 발전은 이미 인체의 생리, 병리, 해부학의 거의 모든 부분에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증상에 그 원인을 모른다는 것은 좁은 벽을 깨지 못한 무책임함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넘쳐납니다.

탐스러운 구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내가 그 구슬들을 필요에 따라 모으면 작품이 됩니다.

노래 가사처럼 내가 조금만 옆으로 시선을 돌릴 수만 있다면 구슬들을 모아 지적 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학이나 한의학이라는 틀 안에만 있으면 안주하려는 타성이 그 작은 호기심마저 매몰시켜 버립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팝니다.

진정 환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왜?라는 끝없는 탐구심이 벽을 허물고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됩니다.


길을 가다 보면 떨어진 핀이 보통 사람에게는 하나의 쓰레기지만 그것이 있어야만 천 리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사막에서 한 모금 냉수와 같을 것입니다.


화두처럼 갈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수없이 많은 보물들이 주위를 스치나 흐르는 물 보듯이 흘려보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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