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퍼즐(자연면역-잃어버린 그때를 찾아서)

by 정희섭

드라이브나 자전거로 야외로 나가보면 어느새 신록(新綠)으로 물들고 연이어 녹음(綠陰)에 황금 들판을 보게 된다.


관광지 상점에 가면 알록달록 절경이나 만화의 한 장면을 담은 그림 퍼즐을 아이들의 성화에 사서 집에 오면 큰 일거리가 된다.


대개 아이가 사달라고 졸랐으나 복잡함과 인내에 싫증을 쉽게 내는 바람에 꼼짝없이 아빠가 매달려 차곡차곡 그림을 완성한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꼭 한 조각이 사라져 미완으로 남은 적 없으셨는지?


퍼즐 작품에서의 한 조각은 절대적 위치를 점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길거리에 떨어진 그 조각은 아무런 가치는커녕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이라는 퍼즐 작품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요소들은 그 하나하나의 퍼즐로 존재한다.


봄에는 옅은 녹색을 띠다가 여름에는 짙은 녹색, 가을에는 붉거나 황금색, 겨울에는 흰색을 지닐 확률이 높겠다.


각각의 퍼즐은 서로 조화롭게 합쳐졌을 때 비로소 존재 가치가 있다.


인체로 국한하여 살펴보면 각 계절처럼 조건의 변화에는 거기에 맞는 색깔을 갖듯이 순응하는 것이 자연을 이치를 따르는 이른 바 순리(順理)이다.


근래 K 방산이 인기가 있는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가 가진 지리적 요인이 많이 대두되는데 여름엔 사막처럼 덥고 겨울엔 시베리아처럼 추우며 장마에 습지를 타개해야 하는 등 모든 악재들을 헤쳐 나가기 위한

대응책의 개발은 전 세계 어느 환경에서도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반면 평지만 있거나 계절의 변화가 심하지 않으면 굳이 강화된 조건에 대응할 이유가 없으므로 글로벌 환경에서는 큰 약점이 된다.


인체도 그렇다.

60~70년대 한 겨울에 얼굴이 빨갛게 익고 콧물을 흘리면서 동네방네 쫓아다니든 아이들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지....


머리맡 물그릇이 아침엔 꽁꽁 얼어 있고 양지바른 돌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재잘대든 시절엔 감기는 병도 아니었으며 알레르기가 어떤 병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감기는 바이러스질환으로 유일한 치료약은 내 자신의 항체(면역)이며 어떠한 감기약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치료를 방해한다.


저절로 낫게 되면 항체가 형성되어 재발을 잘 하지 않고 면역력이 상승하나 감기약은 반대로 치료를 방해하여 치료 기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재발하게 만들어 만성으로 계속 병원을 다니게 만든다.


지금처럼 보온과 난방이 충분하지 못했던 그 시절엔 오롯이 몸으로 때워야 했으며 그 과정을 지나면서 몸은 더 단단해졌다.


그래서 머슴집 아이는 튼튼한 반면 의료 혜택을 쉽게 받은 부잣집 아이는 걸핏하면 병치레하는 아이로 소설에 잘 묘사되는 이유이다.


여름에는 10리 등굣길 뙤약볕에 얼굴이 까맣게 타고 가끔은 모기에 시달리고 기생충과 이웃하였지만 큰 탈 없이 보냈었다.


그 당시에는 병원이 읍내에 한두 개 밖엔 없었지만 병원 복도는 한산했다.

맹장염이나 걸려야 병원에 가는 줄 알 정도였으니.


의료 보험과 낮아진 출산율은 3~4명이었던 과거에 비하면 현재는 부담이 줄어야 하는데 소아과나 내과는 항상 환자로 넘쳐난다.


당시 재래식 화장실에 휴지는커녕, 운이 좋으면 신문지를 사용할 정도로 궁핍한 시절이었으나 지금처럼

요도염, 방광염이 많이 문제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찌 보면 좀 부족했던 그 시절이 나를 단련시킨 시절이었으며 전체 퍼즐의 적절한 한 조각으로 자리하지 않았나 한다.


현재 훌륭한 주거 환경은 계절의 변화를 잊게 하고, 자동차나 엘리베이터는 다리로 하여금 이동의 권리와 의무를 잊게 하며 촘촘한 의료 혜택은 저절로 지나갈 수 있는 감기 같은 증상을 임의로 제어하여 저항력을 키울 기회를 잃게 한다.


퍼즐이 계절마다 다른 것처럼, 인체도 계절이나 직업 같은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해야 한다.

가령 겨울에는 혈압, 혈당이나 콜레스테롤 등의 수치가 올라가야 하고 여름에는 떨어지는 추세를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획일적인 수치를 정하여 거기를 벗어나면 질환으로 진단하여 강제로 수치를 조정하는 것은 여름에 겨울옷을 입히고 겨울에 반팔 티를 입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즉 손을 댈수록 편차는 더 커지게 되고 더 강력한 조정을 요하게 되는 것처럼 없던 증상이 생겨 복용하는 약의 종류와 양이 늘어나게 된다.


순응이란 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이니 추워야 할 땐 춥고, 더워야 할 땐 더워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 힘듦을 피하고 싶다.

여기서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무리하지 마라``연골이 닳는다``60 넘으면 몸이 쇠약해지므로 비타민 등을 보강해 줘야 한다`라는 짐짓 전문가의 훈수로, 게으름에 본능인 인간의 나약함에 편승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다.


촛불은 끝까지 변함없이 타다가 마지막에 후룩하고 꺼진다.

인간도 본디 그러하다.


`산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20대 같은 80대 분들이 산을 주름 잡고 다니신다.

하지만 의사의 충고를 하나님 말씀처럼 믿는 사람들 중에 유모차를 밀고 계단도 잘 올라 가지 못하며 요양 시설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무엇을 말함이겠나?


계절마다 그 색으로 빛나는 찬란한 퍼즐 조각이 돼야 하지 않겠나?

무채색의 흐릿한 퍼즐로 어울리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살아온 우리네 선조들의 훌륭한 생존 능력이 유전자에 새겨져 나에게 왔다는 것을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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