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간 길(명현(暝眩)반응)

by 정희섭

잡초나 나무를 뽑을 때 뿌리가 얕은 것은 한 손으로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지만 뿌리 깊은 녀석은 한참을 끙끙대고 힘을 소모해야 겨우 제거할 수 있다.


질병도 같은 이치를 갖는데 병의 뿌리가 얕은 사람은 치료를 함에 있어 바로 효과가 나타나 비교적 단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하지만 몇 개월이나 몇 년을 앓아온 사람은 그 뿌리가 깊고 만성화되어 증상은 심하지 않는 듯하나 막상 치료를 하게 되면 급성 반응이 따라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대부분의 전쟁이 초기 며칠이나 몇 주내에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두 세력이 비슷하거나 또는 강력한 군대를 가졌음에도 전술, 전략적 실수로 인해 초기 제압에 실패할 경우 지루한 내전의 단계로 접어든다.


전쟁 전의 평화로운 시기와 전쟁 중의 비상 시기에는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변화하는데 질병의 발생은 정상 상황에서 비상 상황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대부분 질병은 며칠의 과정을 거쳐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정상 생활 패턴으로의 회귀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질병이나 질환이 만성으로 이환되면 오랫동안 비상상황이 고착화되어 정상생활의 회귀가 어려워진다.


치료는 흐르는 물줄기를 바꾸는 것과 같아서 가는 물줄기는 쉽지만 도도한 흐름을 바꾸는 것은 댐을 만드는 것처럼 큰 변화와 시간을 요하게 된다.


화병(火病)의 치료를 예로 들어보면...


화(火)는 물로 끄듯이 사람의 화병도 물의 역할을 하는 처방으로 그 기세를 다스린다.

화병이 약한 경우는 마치 끓는 냄비에 찬물을 붓는 것과 같아 바로 진정이 된다.


화병이 오래되거나 정도가 심한 경우는 가스불 위의 냄비 속 물이 모두 증발되면 외견상 큰 변화(끓어오름)가 없어지나 여기에 물을 부으면 바로 식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심하게 끓어오른다.


한약을 처방해 주면서 이런 얘기를 미리 함으로써 어느 정도 예측을 함에 환자들이 덜 놀라지만 잘 모르는 경우 병세가 더 심해졌거나 한약의 부작용으로 오해하기 쉽다.


두통이나 가슴 답답함, 부기, 위장의 팽만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데 운동을 하거나 침을 맞아 조절을 하면 서서히 급성기가 지나면 호전되기 시작한다.


만성 기침병이나 피부병을 치료하다보면 일시적으로 더 심해졌다가 낫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치료 과정에서 완전히 나아가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현되는 불편한 증상이나 이상한 현상들을 명현반응이라 칭하였다.


빠른 결과와 즉효를 요구하는 현시대에는 잘 이해되지 못할 수 있으나 밥을 맛있게 짓기 위해서는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름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급한 마음에 증상이 있을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는 치료 행위는 초기에 저절로 치료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하고 점점 치료를 어렵게 한다.


마치 담배나 술에 중독되는 것처럼 머리 아프면 두통약을, 기침엔 진해 거담제, 열엔 해열제 이런 식으로 대증요법을 쓰기 시작하면 초기에 끝낼 전쟁을, 내전 상태로 만들어 인체 면역력의 심각한 소모를 유발한다.


사람은 각자 자기 몸을 운영해가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어, 선장이 배를 모는 것과 같다.

인체는 자율로, 잘못된 상태나 조건이 생기면 마치 정밀한 기계장치가 경고를 울리 듯이, 통증이나 발열 피로 등의 형태로 끊임없이 표현된다.


따라서 증상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은 그 근본 원인을 해결함으로써 경고음을 꺼야지 잠시 귀찮다는 생각에 망치로 그 경고 장치를 때려 부수는 어리석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가령 두통이 생겼으면 두통의 원인을 해소해서 저절로 통증이 없어지게 해야 하는데, 그 원인을 모르고 진통제로 단지 두통만 없애려고 하면 만성이 되거나 인체가 두통의 원인을 해소할 수단을 뺏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해서 생긴 만성 질환은, 잘못된 길을 가면 그만큼 돌아와야 하는 자연 섭리처럼 더 많은 치료 기간과 명현반응 같은 더 힘든 치료 과정을 겪을 수 있다.


현대의 문명화된 세상은 많은 육체적 부담을 줄여주고 풍부한 음식, 깨끗한 환경 위생을 제공하여 위험 요소가 많이 줄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위험 요소가 제공하는 반응과 대응력의 소요 감소는, 결핍이라는 빛과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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