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일기: 사지않는 에너지

by Slow Sentences

백수 8개월 차다.

모아두었던 생활비는 거의 바닥이 났다.


서장훈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이 있으면 결정이 쉬워진다고.

우리는 정반대가 됐다. 돈이 없으니 모든 결정이 어려워졌다.

물건 하나를 사기 전에도 최소 다섯 번은 더 고민했고,

쿠폰이 있는지, 지금이 최저가인지 몇 번이고 검색했다. 그

렇게 돈은 아꼈지만, 대신 시간이 더 많이 들었다.


백수 생활 처음 세 달까지는 괜찮았다.

취직이 확정되면 근교로 놀러 가자는 얘기도 했고,

월급을 타면 이건 꼭 사자며 사소한 미래를 그렸다.

이 시간을 전화위복 삼아, 더 좋은 직장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장밋빛 미래는 참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백수 8개월 차다.

무언가를 ‘사지 않는 선택’조차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결정들이,

이제는 매번 마음의 치열한 회의를 거쳐야만 가능해졌다.

우리의 하루는 점점 작아졌고, 선택 하나하나가 피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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