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백수와 혁명

by 민예

그는 오아시스 콘서트 티켓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마음은 고마우나 시험 기간이라 어렵다고 답했다. 중차대한 고시 같은 시험이 아닌 대학교 4학년 중간고사 따위였다. 한심했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라고 맹신했던 고등학생 때의 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돌출적으로, 번복했다. “오아시스 공연 같이 갈까...?” “갑자기 왜 ㅋㅋㅋㅋㅋㅋㅋ” 단지 네가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애교를 부렸지만, 기실 내게는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행위였다. 자랑처럼 으스대던 학창 시절 일등이라는 도그마에 갇힌 채 이십 대의 반을 보냈다. 정작 삶의 중추적 형태인 감정과 관계 공부는 뒷전이었다. 언제까지 고지식하게 살 수는 없는 법. 사랑하는 사람의 힘을 빌려 작은 균열을 내고 싶었다.


비록 가사를 외우지 못했지만 틈틈이 오아시스 노래를 들었다. 특히 셋 리스트 마지막 세 곡인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 『Champagne Supernova』를 집중 공략했다. 그는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내가 사람멀미를 느낄까 걱정했다. 연애 초반부터 짐만 지우는 것 같아 미안했다. 다행히도 건강 관리에 힘쓴 탓에 컨디션이 좋았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내가 역사의 현장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인생 첫 콘서트가 오아시스의 16년 만의 재결합 무대였다. 그 덕분에 이런 호강을 다 누리다니 나는 복에 참 겨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밴드와 관객의 열기에 흠뻑 빠졌다. 멜로디가 기억나면 마음 가는 대로 음차하며 따라 불렀다. “I’ll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 몇 안 되게 외운 가사 중 그 대목이 유독 폐부를 찔렀다.


전승민 평론가는 예소연 작 『그 개와 혁명』을 서평하며 이런 구절을 남겼다. “주체가 자신을 압도하던 패러다임 구조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인간은 자신 앞에 놓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규정된다. 다만 해석은 자율적이지도 유연하지도 못하다. 사고 패턴은 거시적 구조의 틀 속에서 관습처럼 굳어진다. 내가 성적에 연연하는 것도 인적자본에만 기대어 성장한 한국의 경제발전 모형에 기인한다. 나 자신을 피동화하는 패러다임에서 탈피하는 것은 고되다. 메타인지는 극복의 시발점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이를 완성하지는 못한다. 어른들은 성적에 집착하지 마라고 아이들을 훈계하지만 그는 이미 고학벌의 효용을 누렸거나 당장의 자기 자식 교육에는 열성이다.


그렇기에 ‘패러다임으로부터의 탈피’는 혁명적이다. 이는 대의와 유혈 같은 무거운 단어와 배치되는 일상에서의 혁명이다. 노엘 갤러거의 입을 빌리자면 침대에서부터 시작한 혁명이고, 예소연의 손을 빌리자면 장례식에 반려견을 데려오는 혁명이다. 각각 노래와 문학에서 차용한 점을 고려한다면, 혁명의 수단은 결국 서사다. 무력하게 순응했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이야기를 제시해야 한다. 이는 사이비 전문가가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겠다는 거만한 자세로 설파하는 얄팍한 정언명제가 아니다. 한평생 전문 분야를 고집스레 파고든 지식인이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며 전수하는 정연한 가언명제다. 그런 개개인의 미시적 혁명을 돕는 이를 이 시대의 사표(師表)라고 부른다.


나는 세 줄기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첫째, ‘안으로의 수렴’이다. 이와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밖으로의 수렴’은 외적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행복도가 결정된다는 믿음이다. 전술한 성적은 그러한 조건 중 하나이다. 우등이 곧 행복이라는 명제와 상대평가 제도가 결합하여 내가 행복하려면 남이 불행해야 하고, 성적을 위해 만사 제쳐 두어야 하고, 불행은 나의 노력 부족이라는 도식을 만든다. 김주환 교수는 저서 『내면소통』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편도체 안정화 및 전전두피질 활성화가 행복이라는 명제와 신경가소성 이론을 결합하여 행복은 오로지 내적 활동으로만 점유된다는 대항 담론을 생성한다. 나는 시류를 쫓아가느라 애썼던 눈을 감고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둘째, ‘저속노화’다. 단순당과 정제곡물은 평생의 짝꿍이었다. 유치원생 시절 어머니가 냉장고 위에 숨겨 놓은 사탕을 찾아 싱크대에 올라간 적이 있을 정도로 단것을 좋아했다. 하루에 과자 한 봉지는 기본이었고, 아이스크림은 한 번 먹을 때 서너 개를 흡입했다. 빠른 스트레스 해소에는 당류 가득한 가공식품이 제격이었다. 이와 더불어 구부정한 자세로 종일 책상에 앉아 있으니 거북목과 척추 측만이 생겼다. 공부 시간을 늘릴수록 운동을 포기해야 했고 당 섭취는 늘었다. 건강 악화는 성공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대가라 자위했다. 정희원 박사는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서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차이가 지속적으로 커짐에 따라 현대인의 고통 최소화 전략은 장기적 고통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가속노화에 대항하는 담론으로서 이동성·마음건강·신체전강·내재역량 등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 저속노화는 이제 그의 이름보다 유명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나는 환갑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함께 노화 속도를 늦추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가공식품을 치워버리고,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짜고, PT를 받아 근력을 키우고 있다.


셋째, ‘포르노 영구 단절’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남성 대부분이 청소년 시절 포르노를 쉬이 접하게 되었다. 강한 중독성 탓에 상당수가 포르노를 자주 소비하지만, 포르노는 성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로 쉬쉬하는 분위기다. 성의 터부시는 음성화를 낳고, 이는 포르노가 성욕 해소의 적절한 수단이라는 그른 관념을 고착화한다. 게리 윌슨은 저서 『포르노, 그리고 당신의 뇌』에서 포르노 옹호론자의 비과학적 주장을 반박하고, 포르노는 성욕 해소를 위한 차악이 아닌 성욕을 왜곡시키는 최악이라 주장한다. 포르노는 집중력 저하, 우울증, 왜곡된 성 인식, 인간관계 기피 등을 수반하지만 접근이 너무 쉬운 탓에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지 않거나 포르노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 포르노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세 혁명 중 가장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상대가 가장 강력하여 진전이 더디다. '포르노는 인생을 망가뜨린다.' 포르노에 혐오의 딱지를 붙여야 한다.


혁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몇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우선 유튜브의 덕택이 크다. 위에서 지식의 출처를 책이라고 언급했음에도 가장 효율적인 배움의 장소는 유튜브다. 김주환 교수와 정희원 박사는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며 이미 강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게리 윌슨 교수의 TED 강연은 현재 1753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는 중독의 위험성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중독을 물리칠 현인의 강의를 무료로 들려준다. 이러한 유튜브의 역설을 잘만 이용하면 패러다임과 싸울 강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시간적 여유다. 작년부터 준비했던 시험에서 떨어졌고, 내년 시험을 다시 보기로 결심했다. 아직 명목상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상태는 백수다. 내 긍정적 사고방식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유튜버 씨씨코칭구는 백수를 이렇게 묘사한다.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내면의 강인함을 기를 수 있는 엄청난 기회.” 언제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맘껏 누릴 수 있겠나. 혁명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백수는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 백수와 혁명’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단어를 접합하여 나를 설명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 혁명의 단초는 그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게 감정적으로도 그렇지만 이성적으로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반문했다. “감정에 휩싸여 네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연인의 관계에서 벗어나더라도 너는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고 그래서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야.” 그는 내가 영화 『세계의 주인』이 보고 싶다고 하니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한다. 새벽에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출근 전 편의점에 들러 타이레놀을 사다 준다. 동호회 송년회에 참석해도 괜찮은지 내 의사를 먼저 묻는다. 내 지인의 소개팅 상대를 나보다 열심히 찾아준다. 내가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지지해 줄 거라고 말한다. 철야근무에도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내 예민함에서 기인한 신체적 통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다. 나도 그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싶다. 그래서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포르노를 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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