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야 너의 세계는 안녕하니. 항상 명랑한 목소리로 “선배!” 하고 외치던 네가 생각난다. 오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너의 모습에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어. 오래간만의 해후를 나누기에 1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너를 대학 후배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이 아닌 배움의 공동체 속의 도반으로서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 너의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너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싶다. 지금 네가 얼마나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것도 자칫 너에게 상처를 주는 구절이 담길까 조심스럽네. 네가 인스타에 처음으로 나를 언급했던 글이 떠올라. 나영석 pd의 말을 인용해서 나에게 과분한 상찬을 해줬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포스터에는 나 덕분에 세계가 넓어지고 있다는 메모를 남겨줬었지. 보잘것없는 나로 인해서도 누군가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니. 그 메모를 읽는 건 참으로 신기하고도 놀라웠던 경험이었어. 사실 지금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스무 살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니까. 내가 목표했던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 그러고는 어떤 목적도 없이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고 있어. 대학원 졸업 후 미래가 벌써 걱정된다고 했지. 선배는 25살에 뭐가 고민이었냐고도 물었고. 글쎄다.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며 느는 건 쓸데없는 냉소뿐인 것 같기도 해. 제대로 슬퍼하지 않고, 이따위는 별거 아니라고,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쿨한 척하는 거야.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성공하고 싶고, 성공한 사람을 질투하고, 사랑받고 싶고, 사랑받는 사람을 시기하는 사람이야. 어제는 나의 친한 친구가 나에게 계속 연락이 없어 내가 서운해하는 꿈을 꿨어. 실은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거의 연락을 하지 않은 그 친구에게 조금 섭섭하긴 해. 그러나 한 번도 그런 말은 꺼내본 적 없어. 이런 관계가 편하다며 에둘러 그럴싸한 변명을 하곤 했지. 그제는 내 시험 결과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꿈을 꿨어. 부모님 세대처럼 시험 성적과 등수가 게시판에 걸린 거야. 시험을 잘 봤다는 아는 후배가 1등이었고, 나는 거의 꼴등이었지. 나도 참 미련한가 봐. 이런 부질없는 꿈을 꾸고 나면 한숨만 나와. 무의식이 까발린 나의 실체가 부끄럽기도 하고. 나도 너처럼 요즘 글을 쓰기가 어렵다. 열패감과 허무주의에 젖어 있는 이에게 어떤 영감이 떠오르겠니. 다만 오늘 너를 보니 단지 너의 세계가 안녕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이를 글로, 편지의 형태로 너에게 전하고 싶어졌어. 너와 각자의 영감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이따금 뇌리를 스친다. 그때야말로 정말 젊음을 만끽한 순간이었어. 대학에서 너와 같이 수학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우리가 와플을 사고 기다리던 중 한 중년 사내께서 다가와 짜장면을 파는 집이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으셨지. 나는 지도 앱에 짜장면을 검색했고, 와플 가게에서 2분 거리인 가게를 찾아냈어. 이곳이 초행길이신 것 같아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어. 그분은 실은 아내가 대학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짜장면이 먹고 싶다 해서 찾아보고 있었다고 말하셨어. 중국집 앞에서 다다르자 그분은 한참이나 어린 내게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셨어. 그때 뭔가 기분이 이상하더라. 짜장면을 사러 가는 단순한 행위에, 나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는 자그마한 몸짓에, 누군가를 고려하고 있다는 감각의 진심이 느껴졌어. 나는 당신과 당신의 아내가 앞으로도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다소 부담스러운 염원을 담아 눈인사를 건넸지. 지금 너에게도 이 글로써 같은 인사를 건네고 싶다. 건강해야 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치열하게 살아내다 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