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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노래 Jul 16. 2022

현재의 아름다움

“우연과 상상”에 대한 단상

“우연이 계속되면 운명이 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2021)”은 우연, 그리고 상상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는 3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엮은 영화이다.


“우연과 상상”은 수 차례의 갑작스러운 줌 인(zoom in)과 줌 아웃(zoom out)의 소격 효과를 활용해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한다. 우연이 그만큼 우리의 삶에 불쑥 칩입하는 낯섦이고, 상상은 언젠가 마침표를 찍고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때때로 사실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고, 현실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을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자기 위선인 것이다.


나의 가장 솔직한 감정이 발현되는 예상치 못한 우연, 그리고 나의 가장 솔직한 욕망이 투영되는 자유로운 상상. 우연과 상상이 없는 삶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므로.


우리가 바라는 모든 소망이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를.


이하 내용은 본 영화의 줄거리 및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카즈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자신의 친구와 잘 되어가는 남자가 알고 보니 2년 전 자신과 헤어진 애인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한 여자의 우연과 상상.

이별 사유가 자신의 바람이었음에도 서로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던 메이코는 카즈키를 찾아가 언쟁을 벌인 끝에 포옹을 나눈다. 하지만 그마저도 카즈키의 비서에게 발각되며 어느 방향으로도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그들은 며칠 후 메이코와 츠구미가 하필 함께 있을 때 카즈키를 마주치는 최악의 우연을 겪으며 혼돈 속으로 빠지고야 만다.


두 번째 에피소드 : ‘문은 열어둔 채로’

“문은 열어 두세요.”


낙제 위기의 사사키는 세가와 교수가 눈물겨운 부탁에도 끝내 낙제점을 부여해 취업길이 틀어막히자 섹스 파트너 나오에게 미인계를 이용해 교수에게 복수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오는 세가와 교수가 집필한 책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명목으로 그를 찾아가 작중 외설적인 내용을 낭독하며 그를 유혹하지만 세가와 교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되려 교수에게서 인간적인 위로와 공감을 처음으로 받아 본 나오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그녀는 실수로 낭독한 내용이 담긴 음성 파일을 ‘사가와’라는 대학 관계자에게 보내면서 두 사람 모두 최악의 결말을 맞이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 : ‘다시 한번’

“너도 나를 기억하잖아?”


레즈비언인 나츠코는 동창회에서 2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짝사랑했던 아야를 만나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건넨다. 그러나 나츠코가 만난 아야는 나츠코가 그리워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으며, 아야 역시 나츠코를 다른 누군가로 오해했음이 서로가 한참을 대화를 난 다음,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때에 밝혀진다.

하지만 나츠코와 아야는 서로가 그리워 한 상대방에게 꼭 했어야만 하는, 20년간 묻고 살아온 가슴 한 켠의 말을 롤 플레이(role-play)를 통해 해소하며 끝내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데에 성공한다.


“우연과 상상”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연출한 차기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와 비교할 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온전히 다가온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연극이라는 상상과 주인공의 현실이 혼재된 상황에서 환상과 현실이 서로에게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지를 다룬다면, “우연과 상상”은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의 연출 기법으로 상상을 현실에서 원천 분리해 낸다. 그렇기에 “우연과 상상” 속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 속 주인공들은 각자만의 내밀한 상상으로 현실에서 나름의 길을 개척하지만, 그 중간 과정은 오로지 그 사람만 간직하는 망상의 한 갈래로 남아 타인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두 주인공이 각자의 상상에 서로를 초대하여 씻어내지 못한 과거에서 해방되는 과정은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3시간에 걸쳐 다루어지는 이야기의 예고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2021)”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가 궁금하신 분들은 제 이전 글인 “마음, 감정, 소통, 그리고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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