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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04. 2024

비무장지대의 쇠뜨기

쇠뜨기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셨어. "그날은 새벽까지 무더운 날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전차들이 줄지어 굴러가면서 굉음소리가 나기 시작했어. 그러곤 여기저기 포탄 날아와 터져 땅이 흔들리고 흙이 튀어 올랐어. 나중에 보니 줄기와 잎은 사라져 버렸고 뿌리만 몇 가닥만 남아있지 뭐야! 이게 무슨 난리야 싶었어 궁금했지만, 땅속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겨우 정신을 차려 잠망경 같은 생식 줄기를 뻗어 땅 위로 올라가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우리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 전부 사라졌더구나!" 슬픈 과거에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셨어. 

"하지만, 우리가 누구더냐?" 난 대답했지.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곳에서도 제일 먼저 땅 위로 솟은 오뚝이예요!" 내 답에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셨지. "그래. 맞다. 할아비도 생식줄기 끝에 포자낭을 터뜨려서 살려고 무척 애를  썼어. 그런데 몇 해 동안 포탄 총탄소리는 가까이 때론 멀리 환청처럼 들렸어. 잘못하다간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더구나!"  내가 물었어. "사람들은 왜 싸우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글쎄다 나와 상관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총소리가 멎고 철조망이 생기더니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어. 다행히 남쪽에서 불어온 훈풍이 철조망 건너편에 자리 잡은 형제 소식을 알려주었어. 우린 뿌리로 가족을 늘리기도 하지만, 포자로 멀리까지 날아가니 서로 떨어진 것이 아쉽진 않아. 바람이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거든." 

쇠뜨기의 생식줄기와 포자경 (뱀의 머리를 닮아서 뱀밥이라고도 부른다)

난 궁금한 게 생겼어. "사람들도 바람이 소식을 전해주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가는 잎을 찌푸리시더니 "그래, 바람은 누구에게나 소식을 들려주지. 그런데 사람들은 하도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다 보니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귀가 막히고 말았단다." 그 말을 듣고 난 슬퍼졌어. 서로 풍선을 날려서 소식을 주고받는 것 같았거든. 매일 큰 소리로 떠들던 것은 뭐였을까? 할아버지가 내 표정을 보시더니 "아이야 걱정 말아라. 우리가 그러지 않으면 되지 않니? 우릴 소가 좋아하는 풀이라고 쇠뜨기로 이름 지은 걸 봐. 소가 그럴 생각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거야!. 자! 우리에게도 두 개의 모습이 있지? 연한 갈색 생식줄기가 먼저 올라오고 나중에 초록색 영양줄기가 올라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뿌리가 하나이고 서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저들은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라"

쇠뜨기 영양줄기

난, 골똘히 생각했지. 우린 너희보다 약하지만, 몇 억 년 전부터 지구에 있었던 양치식물이야. 그동안 사라진 동물과 식물도 제법 보았어. 멸종한 공룡도 그중에 하나인데, 그들의 세계는 1억 6천만 년 동안 이어졌어. 그런데 지금 너희는 지구의 주인행세를 하며 너희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고 있는 동식물들도 멸종시키고 있지. 할아버지는 너희를 원망하지 않으셨어. 그리고 묵묵히 너희가 벌인 전쟁 속에서도 다시 삶을 이어오셨지. 너희도 서로 처지를 보살펴주고 싸워야 할 이유보다 싸우지 않고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어떨까? 어릴 때 동생과 먹을 것 갖고 다퉈도 남이 되진 않잖아? 나도 주위 상관없이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고 포자도 더 많이 퍼트리고 싶지만, 세상 혼자 살 수는 없는 거더라. 너희에게 생식줄기는 나물로 내어주고 영양줄기는 약으로 내어주지. 난 꽃을 피우지 않는데, 꽃말이 있어. 너희들이 붙여준 건데, '되찾은 행복'이래. 아마도 그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낸 우리를 보고 너희 바람을 담아낸 게 아닐까 싶어. 그 마음 모아 철조망 따윈 걷어내고 행복 되찾길 바라.

쇠뜨기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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