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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03. 2024

꽃다지 No.1과 꽃누리 로봇

난,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무인 우주정거장 누리 스테이션 실내 온실에서 깨어난 꽃다지 No.1이야. 내 이름은 나를 보호, 관찰하고 있는 A.I 로봇 꽃누리가 붙여준 이름이지. 이곳에선 나와 형제들이 자라고 있는데 모두 다섯이야. 우린 씨앗이 깨어난 차례대로 이름이 붙여졌어. 아직 깨어나지 않은 막내는 꽃다지 No.5로 불리게 될 거래. 위로 올려다보니 온실 조명이 겨우 눈을 뜰만큼만 빛을 주고 있었어. 뿌리도 익숙하지 않아서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단단한 땅이 아니라 물 위에 떠있는 거야. 그때 꽃누리가 말을 걸었어? "세상에 나온 기분이 어때?" 대꾸할 기분이 들지 않아서 "별로 상쾌하지 않아" 꽃누리가 내 말을 듣고 되뇌었어 "실험체 일지 1일, 꽃다지 No.1 움 틈" 그 소리에 기분이 묘하게 싸해졌어. "꽃누리 무슨 대화가 그래?" 돌아온 대답은 "영양분 투입".

꽃다지 겨울잎. 별과 닮았지?

그와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었어. 난 싹을 내었지만, 형제들은 더 이상 자라지 못했고 막내만 겨우 움을 트고 살아났지. 유일한 형제였으니까 그를 응원했는데, 빛도 이상하고 살던 곳과 너무 다른 환경이 못내 힘겨운지 아무 말하지 않았어. 아픈 형제와 이야기하는 것은 포기하고 꽃누리의 말투를 따라 하기 시작했어. "온도를 알려줘!", "영양제는 뭐야?", "빛이 따뜻하지 않아!" 아무 말 안던 꽃누리도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지. "내부 온도 영상 10도, 영양제는 식물용 과립 비료, 빛은 적정 출력". 원하던 답은 아니었지만, 대꾸해 주니 외롭지 않고 기분도 괜찮아졌어. 난, 톱니 달린 길쭉한 겨울 잎을 전부 펼쳐서 우주선 밖 반짝이는 별과 비슷해졌지. 그런데 여긴 따뜻해서 꽃대를 올리는 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어. 꽃대를 올려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조용했던 No5가 말을 걸어왔어. "우린 실험체인데, 아이들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말에 당황해서 꽃누리에게 물었어. "우리가 씨앗을 맺고 그 씨앗이 이곳에서 자랄 수 있어?" 꽃누리가 대답하길 "꽃이 피면 실험 종료, 다음 실험은 상추" 그 말에 놀라서 "꽃이 지면 우린 어떻게 돼?" 꽃누리 대답은 "완료 실험체는 폐기". 그 말을 듣고 난, 정신을 놓아버렸어.

꽃다지 꽃망울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 "경보 상태 이상, No1 무슨 일인가?" 꽃누리가 말을 걸었어. "우린 희망이 없어. 꽃을 피워도 꽃씨가 자랄 수 없으면 우린 아무 의미도 없다고" 꽃누리는 "내 입장에서 의미란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인간 문제를 해결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 내 말이 통할 리 없을 거라 생각한 저 로봇과 단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네 의미에 맞게 우리가 꽃을 제대로 피워낼게. 대신 우리 씨앗을 맺게 해 주고 어디에서든 자랄 수 있도록 우주선 밖으로 내보내 줘" 그와의 협상은 길었지만, 그는 성공적인 실험 결과를 얻길 원했기에 내 요구를 받아줬어. 그 뒤로 나와 No.5는 힘을 내었지. 실험체와 관찰자의 처지에서 꽃누리와 격이 없어져 그를 고집불통이라고 불렀고 그는 나를 코딱지라고 대꾸했지. 꽃을 피우자 꽃누리가 벌을 대신해서 씨앗을 맺게 도와주었어.

씨앗을 우주선 밖으로 떠나보내는 날. 꽃누리는 우리에게 "씨앗이 싹틀 확률 천오백만 분의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에 우린 웃었어. 우리도 쉽지 않았거든. 그 아이들도 잘 해낼 거야. 운이 좋으면 우리가 살던 곳에 떨어져 꽃을 피울 테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아! 화성에서 자리 잡을 수도 있잖아? 이제 우리가 떠날 시간이야. 뒤에서 꽃누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 "실험체 코딱지 No1. No5 폐기"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마워 고집불통, 그런데 그거 아니? 우리 꽃말은 무관심이야. 푸하하!" 그날 검은 우주에 두 개의 별빛이 조용히 사라졌다.

꽃다지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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