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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Aug 14. 2024

접시꽃, 오늘도 평안하십니까?


음식은 냄비에서 만들어지는데, 사람들은 접시를 칭찬하곤 하지. 요리사에게 접시는 얼굴이라는 말처럼 날 접시꽃으로 부르는 건 아마도 내가 아름답기 때문일 거야.  난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이야. 나와 닮은 무궁화는 가까운 친척이지. 옛 부터 큰 키에 분홍 빨강 하양 자주색 꽃을 피워서 대문 앞에서 손님을 맞곤 했어. 많은 이들이 날 지나쳐갔지. 염치없이 뻔뻔한 꽹과리 같은 얼굴, 용 꼬리에 범이 앉은 위엄 있는 얼굴, 연기 마신 고양이처럼 화난 얼굴, 들어올 땐 웃는 낯이었는데 나갈 때 선지방구리가 된 얼굴... 얼굴은 요패라서 사람 마음을 숨기기 힘든가 봐. 난 궂은 장마에도 방긋방긋 웃으며 꽃을 피워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 내 얼굴이 곤 건 알아도 내 속 궂은 건 알리 없을 테니까.

더운 여름날에 피는 접시꽃

사람들은 모를 거야. 내가 왜 문을 지키고 있는 건지. 아주 옛날 꽃왕국에서 정원을 만든다고 소문이 돌았어. 그 소식을 들은 풀과 나무들은 그 정원에 끼고 싶어 했어. 내가 살던 곳은 정원사가 소중하게 꽃을 돌봐주었는데, 그가 자리를 비운 틈에 모두 꽃왕국으로 떠난 거야. 난 키 작고 볼품없는 꽃이었는데, 차마 떠날 수가 없었어. 나라고 가고 싶지 않았겠어? 의리가 있어야지. 그가 왔을 때 사라진 꽃들을 보며 꽤 좌절해 있었는데, 날 보고 남은 이유를 알게 되니 너무 기뻐했지. 그리고 그는 다음에 꽃이 필 때는 큰 키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거라고 축복을 주며 말했지. 언제나 사람 곁에서 문을 지키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 거라고. 축복만 주었으면 되는데, 그 뒷말 때문에 이리 문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거니까 좋기만 할리가 있겠어?

비가 와도 잘 견디는 꽃

한동안 반복되는 문지기 삶을 저주했는데, 아주 못살겠더라고. 그 저주가 반복되는 것 같잖아. 그래서 마음을 바꿨어. 반복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접시는 음식이 담겨야 더 가치가 있듯 피워낸 꽃 역시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 있지. 마음에 지옥 대신 천국을 담기로 한 거야. 꽃이 핀 자리가 꽃왕국의 정원이라 생각하니 비가 와도 기분이 좋아. 내 꽃말은 평안이야. 난 오고 가는 이들에게 항상 웃기만 하는 건 아냐. 평안도 참빗 장사 같이 깐깐한 사람도 내 미소를 보고 풀어지고 여유를 찾기 소망하고 있지. 난 접시꽃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해. 그대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키가 작아도 못생겼어도 대문을 지키는 나처럼 누군가를 지키는 이라면, 당신은 축복이지.

여름 내내 번을 서듯 꽃이 핀다.


그녀 접시꽃으로 태어나다.


한 여름 서는 줄기 초록 겨드랑이

웃음샘 무르녹아  송아리 달렸다. 


하얀 꽃이 피면,

그녀 피부처럼 부드레할 거야. 


붉은 꽃이 피면,

그녀 입술처럼 암팡스럽겠지. 


그리고 질투 많던 작은 꽃받침엔 

어느덧 그녀 같은 미소가 맺겠지


접시꽃(좌)과 무궁화(우) 접시꽃은 풀이고 무궁화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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