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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n 18. 2024

자유여행가 민들레

나는 문 둘레에 많이 피는 꽃이라고 민들레라고 불러. 그러나 나는 집에만 붙어사는 붙박이가 아니고 자유여행가란다. 푸른 하늘을 맘껏 날아가는 꽃이라니 상상해 봐! 멋진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내 여행은 엄마 덕분이야! 엄마는 시골집 허름한 사립문 옆에서 우리를 키웠어. 한 송이 노란 꽃처럼 보이는 우린 100여 송이가 하나로 모여 피워.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를 상상해 봐! 옹기종기 모인 우리에게 엄마는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지. 당신이 어렸을 때 작은 솜사탕처럼 모인 씨앗들이 돌개바람에 안개처럼 날아올라 마을어귀 커다란 느티나무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이야기엔 모두가 흥분했어. 엄마 자매들과 함께 살길 바랬지만, 그들은 도시에서 날아온 수다쟁이 버드나무 씨앗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그럴 수 없었데. 헤어진 슬픔은 사자 이빨을 닮은 잎 속에 감추고 우리에겐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말씀하셨지. "난, 너희가 어딜 가도 좋아!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말해보렴. 힘껏 도와줄게" 이 말에 나는 "저는 도시에 가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요" 엄마는 빙긋 웃으며 "먼 곳에 가려면 준비할 것이 많지." 그러고 나서 좋은 바람을 찾아 날아오르는 것과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견디는 방법을 알려주셨어. 

여행을 준비하는 민들레 씨방

엄마가 알려준 이야기를 되새기며 여행을 준비하던 여름날, 서늘하고 건조한 하늬바람 말소리. "먼 곳에 가고 싶으면 내 어깨에 타렴" 그 말을 듣고 거침없이 씨앗 뭉치에서 빠져나와 바람에 맡겼는데,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은 느낄 틈도 없었어. 새는 날갯짓을 하지만, 우린 100여 개의 솜털이 머리 위에 소용돌이를 만들어야 높이 떠올라서 멀리 날아갈 수 있거든. 드디어 하늘 높이 오르자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어. 내려다본 세상이 얼마나 넓고 신기한지 가슴이 벅차올랐어. 마을에 큰 나무가 점점 작아지고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어. 그러다가 멀리 있던 뭉게구름이 다가오자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며 무뚝뚝한 경고를 했어. "조심해! 저 구름에 네 솜털이 부딪혀 젖으면 널 데려갈 수 없어!"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는데, 세상엔 조심해야 될 것이 있구나 생각이 들었지. 

어느덧 말로만 듣던 도시가 보였어.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다가왔고 깨알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바쁜 듯 움직이고 있었어.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바람이 떠나갔어. 하늘은 붉게 노을 지고 있어서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서둘러 내가 머물 자리를 찾아야 했지. 그런데, 아스팔트가 깔린 도시는 내가 뿌리내리고 살기엔 좋은 곳이 아니었어. 보도블록 틈에 겨우 내려앉았는데, 비좁고 발길에 차이지 않을까 걱정되었어. 울컥 엄마가 떠올랐지만, 이곳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고 멋지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지. 

이른 봄,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삐죽삐죽 억세고 거친 잎을 바닥에 펼치고 사자처럼 외칠 거야. "난 도시를 찾은 여행가이다." 이제 아이들이 꾸는 소중한 꿈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힘껏 돌볼 거야. 그 아이들이 바람 소리를 듣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게 응원할 거야. 내 꽃말 '행복'과 '감사'를 엄마에게 전하고 싶어. 마음 깊숙이 들려오는 꽃씨들의 벅찬 노랫소리가 내 귓가에 울리는데, 어때! 너희도 여행을 떠나고 싶지?

"우리는 꿈을 품은 노랑꽃잎 문둘레"

"우리는 바람 타는 하양고깔 민들레" 

민들레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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