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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n 14. 2024

애기똥풀의 굄성

"거기 지나가는 당신! 우리 이야기 좀 들어줄래?" 5월 볕이 가득한 풀밭에 무릎 높이로 작고 노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합창을 하듯 소리쳤어.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꽃잎이 무슨 하소연을 하는 것 같아서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섰지. 그러자 그들 중에서 여러 개의 콩꼬투리를 길게 맺기 시작한 한 친구가 말했어. "우리는 애기똥풀인데,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에 불만이 아주 많아! 우리의 줄기에서 나온 노랗고 붉은 진액이 아기 똥을 닮았다고 애기똥풀이라고 지었다는데, 정말 기가 찬다고." 그 말을 듣다가 동생과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 이 꽃을 꺾어 돌멩이로 짓찧어서 빻다가 손가락과 옷에 노란 물이 들어버렸지. 물로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아서 엄마에게 한소리 들었어. 그때는 이 꽃이 더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거든. 그런데 누가 내 이름을 똥이라고 부른다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 같아.

수긍하는 내 눈빛에 꽃망울을 단 친구가 한마디 거들었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 너희는 여러 색깔로 물드는 단풍을 좋아하지? 그런데, 단풍은 똥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믿기 어렵겠지만, 식물들은 똥구멍이 따로 없어. 빛을 받아들이던 푸른 잎이 가을이 되어 제 힘을 다하게 되면 자신의 색을 잃어버리게 돼. 그때 잎에 모아 두었던 여러 배설물이 노랗고 붉게 보이는 거야. 너희는 우리가 누운 똥에는 아름답다고 환호하면서 우리 꽃을 똥이라고 부르다니 너무 웃기지 않니? 내 주변에도 말도 안 되는 이름이 붙은 친구들도 있어. 개똥처럼 흔하게 보인다고 개똥쑥, 꽃에 파리가 많이 모인다고 똥나무, 열매가 자잘 자잘 까맣다고 쥐똥나무, 그 친구들도 불만이 많아!" 듣다 보니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여러 이유로 법원에서 바꾸기도 하는데, 이름이 바뀌지 않은 이들이 불쌍해 보였어.

콩꼬투리 달린 애기똥풀

그때 다른 한 친구가 말했어. "난 씨앗을 품고 있는데, 내 아이들이 애기똥풀로 불려지길 바라지 않아! 우리를 제대로 알아주는 것은 개미들 뿐이야! 우리가 이렇게 풍성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개미들이 우리 씨앗을 여기저기 옮겨주고 있는 덕분이지. 씨앗에 개미들이 좋아하는 영양분을 붙여서 고마움을 전하고 있어" 서로 돕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 활짝 웃었어. 내 웃음에 신난 듯 말을 이어갔어 "전해 내려온 이야기가 있어. 눈을 뜨지 못한 아기 까치에게 우리를 물어다가 진액을 발라주던 어미 까치 사랑이 닮긴 꽃 이래. 우린 줄기가 비어서 쉽게 부러지고 연약하지만, 노란 진액이 나와서 상처를 아물게 하지. 게다가 줄기와 잎을 아기 돌보듯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다고. 우리 굄성있지 않아?" 진지한 그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멋진 이름을 고민해 봤어. 까치다리, 젖풀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는데 입에 붙을 만큼 익숙하지 않았어. 널리 기억된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보다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에 진심을 담아서 사랑스럽게 불러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애기똥풀 꽃말은 지극한 엄마 사랑이야. 엄마는 아기가 누운 똥을 보며 냄새나고 지저분한 배설물로 보는 아니라 건강을 살펴보게 되지. 똥이 진하고 노란 애기똥풀의 색깔처럼 보이면 안도하거든. 아기의 간지러운 피부와 울음소리가 진정되길 바라는 마음을 다독여주던 애기똥풀은 그 얄궂은 이름이 아니라 어머니 같은 마음의 참된 속살을 우리에게 주었어. 숨을 열어주고 그 숨을 이어가는 얼은 어머니 마음이고 그 시선으로 바라본 꽃이 애기똥풀이야. 어버이의 달 5월, 마침맞게 피어난 애기똥풀이 하늘에 별이 있는 것처럼 들판의 어머니로 보였어.  

아기똥풀 군락

굄성 : 남의 사랑을 받을 만한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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