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나딘> 9막 베이루트에서 부채춤을

9막 베이루트에서 부채춤을

그날, 아빠의 강의가 끝나고 나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 엄마도 함께 였어. 우리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봤어. 한국에 와서 힘든 건 나 혼자는 아니었을거야. 엄마, 아빠도 나만큼 힘들었겠지。 그래도 묵묵히 나를 위해 기다려준 부모님이 고맙고 미안했어. 그런 나의 마음은 어느새 눈물로 변했어。 나의 눈물은 한 여름 감기 인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곧 엄마와 아빠를 전염시켰어.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부둥켜안고 울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도, 아빠도 눈이 빨개졌어.




엄마가 말했어.

'나딘, 얼마 있으면 여름방학이야. 할머니 집에 놀러갈래?'

'응, 가고 싶어. 하지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진지윤, 주채기, 남달리, 우아해 선생님이 보고 싶을 것 같아.'

'좋아, 그렇게 하자.'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어. 공항은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어. 이 사람들은 다 한국 사람들일까?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어.



엄마는 내게 물었어.

'나딘, 짐 잘 챙겼지? 이제 탑승할 시간이야.'

'응, 간식이랑, 비행기에서 심심하면 읽을 책이랑 그리고...'

'그리고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우리 가족은 곧장 베이루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 탔어.




얼마나 지났을까? 깜빡 잠이 든 줄 알았는데 기내 방송으로 곧 베이루트에 착륙한대. 오랜 비행 시간 탓에 나는 곰 한 마리를 등에 업은 것처럼 피곤했어. 그렇게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는 나도 모르게 아침까지 통나무처럼 움직이지 않고 잤어.



다음 날, 할머니는 지금 마을 축제 기간이라고 아침부터 시내 구경을 하러 가자고 하셨어. 나는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 베이루트 시내 한 가운데에서 열리는 전통 마을 축제를 보러 따라 나섰어. 한국에서 챙겨 온 작은 가방도 함께 가져갔어.



축제는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었어. 학교 운동장만한 둥그렇게 큰 무대를 중심으로 삼백 명은 족히 될 것 같은 관객들이 꽉 차 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녔어. 우리 가족도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어. 그때였어. 사회자가 외쳤어.

'자, 이제 즉석 공연의 시간입니다. 누구라도 나오세요!'

관객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어.

그렇게 시간이 5분쯤 흘렀을까? 아무도 지원자가 없었어.'


이번 즉석 공연을 하시는 분께는 특별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아주 특별한 선물이에요.'사회자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어.

그때, 나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렸어.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가방에서 부채를 꺼냈어. 사실 내가 베이루트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소중하게 가방에 넣어온 건 한국 부채야.



사회자가 말을 이었어.

'와, 예쁜 분홍색 부채네요. 이걸로 뭘 할 건가요? 마술?'

'아니요. 춤을 출 거에요.'

나는 부채를 쥐고 우아해 선생님이 가르쳐 준 춤을 추기 시작했어.


처음엔 관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자 관객들의 존재를 잊고 춤에 빠져들었어.


나는 그 순간 정말 내가 나 다운 모습이라고 생각되었어.


그 누구도 아닌 나.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의 집합체.

내 이름은 나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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