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막 아빠가 학교로 찾아오다.
내일이면 학교에 한 달만 더 다니겠다고 말 한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야. 사람 마음이 참 희한해. 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베이루트로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었어. 그런데 이제 그 마음이 희미해지고 있어. 그건 우아해 선생님과 반 아이들 때문이야.
우리는 아침마다 부채춤을 배웠어. 내가 부채춤을 출 때마다 주변에서 아이들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어.
'나딘은 한번만 보고 완벽하게 따라한다. 어떻게 추는거야? 나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모르겠어.'
'나딘, 베이루트에서 부채춤만 추다가 온 것 아니야?'
'나딘,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춘다'
부채춤만 시작되면 아이들은 약속한 듯 '나딘, 나딘.. 하고 나를 불렀어.
' 무슨 말인지 다 알아 들을 수 없어도 친구들의 눈에는 나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눈빛이 가득했어. 말에는 비언어적 표현이 차지하는 것이 더 크다더니 정말인가봐. 나는 이때까지 한국말을 잘 못해서 꼼짝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 진심을 다른 수단으로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고맙다는 말 대신에 엄지를 세우기도 하고 손하트를 보여주기도 했어. 나는 이런 표현들이 맘에 들었어.
학교에 한 달만 다니겠다고 한 마지막 날이 되었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날처럼 나를 학교로 배웅해 주었어. 그렇게 학교로 도착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교실에 아빠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어.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서.
'아비. 무슨일이야?'
'나딘, 아빠에게 한옥에 대한 강의를 아빠에게 부탁하셨단다. 그래서 이렇게 왔지.'
'뭐라고? 믿을 수 없어.'
'좀 있다 강당에서 보자.'
강당에서 만난 아빠는 다른 사람 같았어. 멋지고 당당했어. 그리고 그 옆에 통역을 위해 엄마도 와 있었어. 나는 어안이 벙벙했어. 아빠가 강의를 시작했어. 이라크에서 보낸 행복한 어린 시절의 모습과 이라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마음 아팠던 현실, 그리고 레바논 대학을 다니며 건축 공부를 하던 모습, 엄마를 만나 나를 키우며 레바논에서 보낸 시절, 마지막으로 한옥에 관심이 생겨 한국에 와서 살게 된 것 까지 모두 들려주셨어.
아빠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되는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며 그 시간들이 힘들 때도 있었다고 했어.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만큼이었을 때도. 하지만 그때마다 늘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견뎌낼 수 있었다고 했어.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 그렇게 말하며 아빠는 고개를 돌려 엄마와 나를 지긋이 쳐다봤어.
아빠의 말에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 일렁거렸어. 묘한 기분이 들었어. 아빠는 말을 이어 갔어. 지금도. 앞으로도 괴롭고 힘든 일들이 찾아 오겠지만 이제는 그럴 힘이 생겼다고 했어.
그리고 누군가가 힘들어한다면 그 사람의 외모나 배경, 성격에 구애받지 않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어.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희망을 잃지 말라고, 손을 잡아줄 사람이 꼭 존재한다고. 괴로운 순간은 지나갈거라고. 웃으며 지금을 되돌아 볼 날이 꼭 올거라고 했어.
아빠의 강의가 끝나자 나는 베이루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어. 분명히 한달 전까지만해도 분명 꽁꽁 언 눈 같은 마음이었는데, 어느샌가 조금씩 녹아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부모님과 우아해 선생님, 그리고 반 친구들、그리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지난 한 달을 잘 버텨낸 내 자신이 꽁꽁 언 눈을 녹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