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같았던 사랑
밀빛 갈색으로 굽이치는 갈색머리의 그 사람을 저는 참 좋아했습니다.보고 있으면 꼭 해바라기가 떠오르는 사람이었어요.갈색 머리와 눈동자,햇살을 머금은 듯한 해사함이요.내 모든것을 주어도 괜찮을만큼 사랑했던 것 같아요.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담겨 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었고, 그 눈동자에 내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을 볼 때는 벅차올랐습니다.세상에 우리 둘만 남겨진 듯했고,그 흔한 사랑 노래 가사들을 전부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투명한 사람이고,책임감 있으며 때로는 귀여운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곤 했습니다.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를 보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된 듯 했죠. "Be brave, stay strong chubby cheeks"그가 자주 하던 말이자 함께하던 시간 중 마지막 인사였습니다.장거리를 앞두고도 참 그다운 인사를 했어요.많이 쓰는 말인데 왜그리 눈물이 나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치하다 생각했던 말들도 그 사람 앞에서는 힘을 얻었고, 별 시답잖은 소리들에 깔깔대며 웃는 하루하루가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정말 오랜만이었어요,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리도록 살아있는 기분은.손을 잡고 저무는 노을을 보며 청계천을 걷는 순간은 아직도 머리에 선명하고,로비에 앉아있던 동그란 뒤통수를 보고 너무나도 신나 달려가곤 했던 기억 역시 생생합니다.헤어지기 싫어 엉엉 울고 계속 뒤돌아보던 순간도,양재천에 앉아 이야기하고 내가 발이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덥썩 나를 안아들거나 업고 걷던 그 사람과의 기억은 정말 아리도록 선명합니다.우리들만의 아침인사와 굿나잇 인사법은 짙게 박혀 아직도 문득문득 버릇처럼 나옵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나고 다양한 나라에서 자라 다문화 배경을 가졌던 남자와,사람에 대한 일관된 무관심과 편견이 없어 문화적 포용력이 넓었던 여자가 만나 문화와 언어를 떠나,둘만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둘이서만 알아듣는 단어들과 그때 그때 다른 기분들에서 쓰는 단어와 표정,더운 여름에도 꼭 잡고 다니던 손과 장르를 넘나들며 조잘대던 순간들.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고 새로이 알게되는 사실이 생기면마냥 즐거워하던 나날들.
사랑하는 것을 잃는 것보다 아픈 것은 없기에 가끔은 차라리 몰랐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곤 합니다.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좋아했고,내 모든 것을 주었기에 후회가 없다고.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기에 후회는 없지만,열었던 마음의 크기만큼 상처를 받았습니다.그 사람은 악의가 전혀 없었으나 그 말은 나에겐 내 존재를 한없이 부정하고 혐오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동일하게 날 사랑했으나,그만큼 좋아했던 사람에게 우울증에 관한 무심한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게 되더군요.그리고 사실,장거리에 지쳐 헤어진 우리에게 묻고싶었습니다.그만큼 사랑하진 않았던걸까요?아니면 더 사랑하기에 너무 어렸던걸까요?
미련해 보이겠지만 그 사람 이후에 누군가를 좋아하기가힘들어졌습니다.그런 열렬한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을 뿐더러,무엇보다 그 사랑 후 이별한다면 그것을 다시 견딜 자신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만나자고 한다면 글쎄,모르겠습니다.이제는 그때의 우리가 너무 사랑스러운 것 같기도 해서요.다만 한가지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그는 장거리가 두렵고 이별이 두려워 한 발 빼고 있었고,나는 그에 상처받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후회없이 사랑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지만,그래도 단 한 점의 후회도 남지 않는걸 보니 꽤나 괜찮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잘 지내길 바라지만 동시에잘 지내는 그 사람의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지 않기를 바라긴 합니다.이기적이게도.이정도의 이기적임은 그래도 이해해 주기를.
I loved you with all my he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