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다정했었기에 여전히 선명한
가장 낭만적이었던 말 중 하나는 “너와 함께 누워서 창 밖으로 별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어”였어,네가 기억할진 모르겠지만.참 지독하게 이성적이었던 네가 나에게 옮았는지 서서히 감정을 보여주고 낭만적인 순간이 생길때마다 난 혼자 감동받곤 했었어.
운전하다가 무지개를 보았다며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에버랜드를 가서 하나 사온게 날 닮았다는 토끼인형이고,생일에는 엉망인 글씨로 신경써서 고른 티가 나는 편지지에 써 준 편지를 주고.오리나 토끼같은 동물을 보면 죄다 나를 닮았다며 릴스를 한 바가지는 보내던 너 덕에 나 아직도 그런 릴스들 잘 못 봐.너무 자동적으로 네 생각이 나서 너도 그런걸 보면 여전히 내 생각을 하길 바라게 되곤 해.
우리 하도 붙어있었어서 그런지 꽤 낭만 있게 놀았다?하천 산책하면서 수다 떨고 정자에 누워서 별이 있는지 보고 서점 가서 서로 책 추천도 하고,경복궁 야경도 보고,서울 시내는 다 돌아다녔던 것 같아.하천에서 내가 발 아프다고 괜히 징징거려보면 네가 날 업고 가고 날 번쩍번쩍 안아주는게 신기하고 좋아서 괜히 한번씩 엄살 부리곤 했었어.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이가 된대.난 안 그럴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모든 일을 척척 처리하다가도 네 앞에서는 7살짜리처럼 굴고 있더라.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괜히 해달라고 하고,징징거려도 보고.내가 애처럼 굴어도 마냥 날 귀여워하고 적어도 네 앞에서는 마음껏 애가 되어도 된다고 말해줘서 처음으로 그래본 것 같아.
난 나랑 네가 인연이라고 믿었어.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설레고 잘 맞을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꼭 내가 남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말투도 꽤나 비슷했어.나중에 가서는 내 영어는 너의 말투를 닮아갔고 네 한국어는 내 말투를 닮아가긴 했지만.함께 있는게 가장 즐겁고 편안해서,별 것 안하고 그냥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앉아있기만 해도 행복해서 시간이 흘러가는게 아깝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당시 내 모든걸 너에게 줘서 난 이제는 미련은 하나도 없어.그냥 그리움일 뿐이야.
딱 하나 미운건,넌 마지막까지 겁쟁이였다는거였어.좋다고는 네가 먼저 말해놓고 헤어지자고 할 용기는 없어서 결국 내가 이별을 말하게 했잖아.서로 싫어서 헤어진게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버거워서 헤어진거여도,넌 그냥 피했잖아.나도 처음부터 무서웠어.너랑 헤어지게 될까봐,널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릴까봐.근데 그래도 난 일단 한번 해보기로 하고 정말 내 최선을 다했어.용기내서 내 얘기도 몇번 했는데 네가 딱히 이해하는 것 같진 않더라.네가 날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가면 외운다는 말만 안 했어도,내가 지금 널 미워할 수 있을텐데.이렇게까지 보고싶어하진 않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도 많이 어렸고,넌 더 어렸더라.실제 나이가 참 많이 어렸어.그래도 단순히 어린 날의 치기 어린 사랑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좋아했던 것 같아.헤어진지 이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네 생각을 완전히 떨치기는 힘든 것을 보니.
넌 나랑 함께한 공간들에 있지 않지만,난 너와 시간을 보낸 곳들에서 일상을 영위해.그러니까 나도 딱 너만큼만 이기적으로 굴려고.네가 누워서 잠에 들기 전,우리가 좋아하던 영화를 볼 때,네가 날 닮았다고 한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이 나기를 바라.
우습게도 난 아직도 너랑 함께 했던 문자들을 지우지 못했어.사실 헤어지고 나서 그 문자들을 볼 용기조차 생기지 않아서 아직까지 열어보지도 못했어.원래 헤어지면 칼같이 다 지우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건드리지도 못하겠더라.미련보다는 그때 널 사랑하던 내가 너무 예뻐서,우리의 낭만이 너무 좋았어서,네 말들이 문자를 열어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건조하게 남으면 기억,따뜻하게 남으면 추억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추억이 기억이 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