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행복한가

by 구키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김윤철 과장, 이현주 대리, 몇 달 전 입사하여 마케팅 팀에 합류하게 된 박하은 사원, 그리고 연우는 야근 중이었다.


연우는 어쩐지 시무룩해 보이는 박하은에게 말을 걸었다.

“하은 씨, 퇴근 안 하세요?”

“네, 곧 가려고요. 아 맞다, 과장님 얘기 들으셨어요..? 저희 다음 달에 행사 또 한대요. 저 다음 달에는 드디어 이틀 정도 연차 쓰고 일본 여행 다녀오려고 했거든요.”

‘네?? 또 무슨 행사요? 다음 달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나도 숨 좀 돌리려고 했는데. 누구한테 들었어요?”

“팀장님께서 이음 미술관에서 고객 초청 행사를 하기로 하셨대요. 팀장님이 얼마 전에 이음미술관 다녀오셨는데 뭔가 거기서 영감을 받으신 건지.. 미술관에서 VIP 대상 문화 행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한번 추진해 보겠다고 부사장님께 보고 하셨고 이미 승인이 났나 봐요. 저도 태서린 차장님으로부터 아까 전해 들었어요.”

“아.. 그렇군요…. 말씀을 안 해주셔서 저는 몰랐네요. 그런데 지금 계획되어 있는 프로젝트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굳이 없던 행사를 갑자기 만들어내셔야 하는 건지… 혹시 다음 달 언제 정도로 생각하시는지도 말씀하셨어요? 몇 명 정도 초청하는 행사를 생각하신대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이현주 대리가 끼어들어 말했다.

“아 그거 저도 들었는데. 그 행사담당은 연우 과장님과 윤철 과장님이라고 아까 팀장님께서 말씀하시던데? 두 분이 상세 기획안 짜오실 거라고 들었어요.”

“헐… 저와 윤철 과장님을 담당자로 지정하신 거예요? 다음 달이면 얼마 남지도 않았고 준비할 것도 많을 텐데 왜 팀장님도 차장님도 아무 말씀을 안 해주신 건지…”

“윤철 과장님은 아셨어요?”

깊은 한숨을 쉴 뿐 아무 말 없는 김윤철 과장을 돌아보며 연우가 물었다.

“아니요. 몰랐죠… 어쩔 수 없죠. 노예니까. 까라면 까고 그런 거죠.”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아 그런 말 너무 싫어요 과장님..! ‘노예’ 라니요.”

“싫어도 그게 현실이니까. 이렇게 사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잖아요.”

박하은이 우는 소리를 하는 가운데 김윤철 과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말했다.

이현주 대리가 강정훈 팀장에게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항상 말을 아끼던 연우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하려던 순간, 복도 끝 쪽에 사무실이 있는 부사장이 지나가다 이들을 발견하고 다들 퇴근 안 하고 뭐 해, 라며 얼굴을 디밀었다.

“어머~, 부사장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이현주 대리가 놀랐지만 반갑다는 듯 애교가 잔뜩 섞인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나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식사하고 잠깐 사무실에 들렀다가 나가는 길인데. 왜들 아직도 퇴근을 안 해? 다들 업무시간에 효율적으로 일을 안 하니까 이 시간까지 남아있지, 안 그래?”

면박을 주는 부사장 앞에서 아무 말 하지 못했지만 연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일을 이렇게 많이 벌리고 항상 퇴근 직전에 불러서 ‘퇴근 전까지 해놓고 가달라’고 하는 상사 밑에서 어떻게 야근을 안 하고 버티겠느냐고.

“여튼간에 다들 고생하니까 내가 강정훈 팀장하고 얘기해서 언제 한번 마케팅팀하고 회식 한번 잡아야겠구먼.”

회식은 제발 저녁이 아닌 낮에 했으면. 이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술을 좋아하는 부사장과의 회식은 늦게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부하직원들이 간절히 바라는 건 상사와의 회식이 아니라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이다.

“다들 마무리 잘해, 그럼.”

부사장이 떠나자 이현주 대리는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며 먼저 퇴근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급작스러운 행사 이야기를 듣고 나니 피곤이 한층 심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연우도 이만하고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급한 불은 일단 꺼놓았으니 나머지는 내일의 내가 하겠지.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뻐근해진 목과 등을 두드리며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다들 퇴근 안 하세요? 오늘은 이만 하시고 같이 나가시죠.”


세 사람은 사무실 불을 끄고 터덜터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피곤하지만 집에 갈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차로 출퇴근하는 김윤철 과장이 주차장 쪽으로 빠져나가고 연우와 박하은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과장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하은 씨”

“좀 뜬금없지만요, 과장님은 회사 다니는 게 행복하세요? 아니, 회사는 좀 그런 것 같고, 그냥 인생 전반적으로 행복하신 것 같으세요?”

“행복??? 글쎄요? 갑자기 왜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흐흐”

갑자기 오글거리게 행복 타령을 하는 그녀가 엉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연우는 웃음 지었다.

“그냥 궁금해져서요.”

“글쎄요.. 하루하루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그냥 살아가는 것 외에 그런 생각을 정말 최근에는 못해봤네요.”

“그렇군요.. 저는 아까 윤철 과장님께서 말씀하신 그 ‘노예’라는 표현이 너무 싫어요. 저는 늘 스스로를 주체적인 존재로 생각해 왔는데 남은 삶을 ‘노예’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야 한다면 너무 비참할 것 같아요..”

“아.. 그렇죠.. 정말 쉽지 않은 문제 같아요..”

행선지가 반대방향인 두 사람은 지하철 방향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인사했다.

“저는 이쪽 방향인데 하은 씨는 저쪽 방향으로 지하철 타는 거죠? 많이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셔요. 가서 푹 좀 쉬시고요.”

“네 과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뵈어요.”

“네 내일 봐요, 하은 씨.”


박하은과 헤어진 후 연우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툭 던진 행복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박하은은 이상주의적인 성향으로, 어린 시절의 연우와 비슷한 구석이 꽤 있었다. 지금 회사에서 선배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겪고 있는 일들은 박하은이 그리던 회사 생활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았을까? 행복에 대해서 최근에 생각해 본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단어를 떠 올려본 적이 없다는 건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걸까? 행복이란 뭘까?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많이 늦었지만 아직 결혼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닌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아이도 낳고,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지금보다 나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 난 행복해질까? 그렇게 될 수는 있는 걸까? 도대체 완벽한 행복을 느낀 시기는 언제였을까? 어딘가에 합격을 하고 바랬던 일들이 소수지만 이루어진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잠시이고 사실 대부분의 시간들은 지난하고 견뎌야 하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우가 다니는 회사는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연우가 꿈꿨던 삶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어디로 가는 거지? 앞으로 어떤 선택들을 해 나가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나이가 들면 불확실했던 것들이 확실해지고 고민이 적어질 줄 알았다. 길을 한번 찾으면 쭉 안정적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가 않았다. 때로는 거의 지뢰밭에서 지뢰 피하기 수준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변수가 많았다. 지하철이 한강 다리 위로 올라오자, 어둠이 내린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연우는 상념에 잠긴 채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keyword
이전 03화회사에 적응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