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

by 구키

강정훈 팀장의 주도 아래 추진된 이음 미술관에서의 행사는 100명 이상 참여하는 만찬 행사였기에 워낙 챙길 것들도 많고 미술관 측과 조율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았다. 늘 그렇듯 강정훈 팀장은 임원들과 별도로 정한 부분들에 대해 실무자들에게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덕분에 양측에 혼선과 오해가 빚어졌다. 물론 그 혼선에 대한 교통정리와 미술관 측의 원망은 모두 연우가 들어야 했다. 게다가 연우 측 임원들이나 미술관 측 임원들이나 서로 웃으며 덕담을 나누고 네트워킹하는 체면 서는 역할까지만 하고 싶어 하지,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어려운 역할에는 아무도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서로의 앞에서는 ‘협조하겠습니다. 잘해봅시다’라고 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돌아서서는 연우에게 ‘어림도 없어. 못한다고 전해’라고 말했다. 아무도 타협할 의지가 없는 가운데 의견 조율이 안되자 양측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직급이 낮은 연우에게 계속해서 서로의 말을 전달하도록 지시했고, ‘아직도 그쪽에서는 우리말을 못 알아먹는 것이냐, 김연우 과장이 책임지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무리 지으라’며 수시로 연우를 압박했다. 물론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여과 없이 연우에게 쏟아냈다.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건 모두 연우의 잘못이 되었다. 강정훈 팀장은 연우가 상대측으로부터 받는 이메일이나 문자에 참조가 되어 있었기에 연우가 화풀이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안에 대해 어떠한 역할도 할 생각이 없었다. 곤란한 일들은 네가 맡고, 나는 행사날 테이프 커팅식에서 중요한 사람들 옆에서 사진만 잘 나오면 된다는 식이었다. ‘너의 월급에는 욕먹는 값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가 했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충우돌 끝에 행사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VIP들을 모신다는 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끄러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기에 연우는 행사 내내 이곳저곳을 점검하느라 몇 시간 동안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했다. 호텔 출장 케이터링 팀에서 준비한 고급 와인이 서빙되고 큐레이터 특강에 특별 음악 공연까지 더해지니 분위기가 좋았는지 행사가 종료될 즈음에는 참석자들이 다른 테이블까지 돌아다니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연우는 비로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뒤편 구석진 자리로 가서 구두를 잠시 벗고 하루종일 뛰어다니느라 아팠던 발을 주물렀다. 연우를 도와 행사를 준비했던 팀원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아이구 다리야.. 오늘 너무 힘드네요.”

“진짜로요. 체력 딸리네요.”

“고생하셨어요, 과장님.”

정말로 고생한 것을 알아주는 건 동료들 뿐인 것 같았다. 이 일을 하면서 연우는 화려한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호텔 조식을 먹을 때면, 이른 아침부터 불판 뒤에서 손님들의 주문에 맞춘 다양한 계란요리들을 정신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젊은 셰프를 눈여겨보게 된다거나, 심지어 청와대에서 귀빈 행사가 있었다는 뉴스만 봐도 매끄러운 행사 진행을 위해 있었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연우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실은 결코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행사가 잘 끝났을 때의 뿌듯함이 있기는 하다. 여러 사람들과 협업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손발을 맞추고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을 때 느껴지는 그런 뿌듯함 말이다. 그렇지만 연우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이것이 연우에게 맞는 일인지, 무엇보다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인지 의문이었다. 연우는 지금 하는 일처럼 특정한 소수의 인물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꽤 오랫동안 가져왔다.


공식적인 행사가 종료되고 고객들이 차를 타고 하나둘씩 행사장을 빠져나갈 무렵, 마케팅팀 단체 메신저방에 강정훈 팀장의 반갑지 않은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다들 수고했어요. 내가 아까 우리 고객분들 중에 한 분을 만났는데, 새롭게 건의하고 싶은 주제의 프로그램이 있으시다네. 이따 행사 끝나고 잠깐 남아서 나랑 얘기 좀 해요.’

안 그래도 행사가 끝나고 철수하면 거의 밤 12시일 텐데 그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것 인지. 시간 감각이라는 게 전혀 없는 평소 강정훈 팀장의 스타일로 보아 ‘잠깐’은 아닐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를 적당히 끊고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아침으로 미루도록 하는 것이 연우와 팀원들에게 남은 그날의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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