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끝사랑은 어디에

by 구키

대망의 소개팅날이었다. 39살의 소개팅은 결코 흔한 기회가 아니다. 남자도 그렇겠지만 미혼 여성의 나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결코 관대하지가 않다. 올해가 지나면 나이가 앞자리가 달라지는 데다 벌써 연말인지라 마음이 조급해지는 연우였다. 소개팅룩을 미리 정해놓았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그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침부터 허둥거렸다.


막상 도착하니 아직 소개팅남은 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사람이 나올지, 이번에는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괜스레 거울을 꺼내어 립글로스를 한번 더 덧발랐다.


그런데… 소개팅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카페 문이 열리고 걸어 들어오는 남자.. 인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 남자만은 내 소개남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

헬멧처럼 귀를 덮는 더벅머리에 꽤 과체중으로 보이는 남자가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실내에서는 일반 안경인데 야외에서 햇빛을 받으면 선글라스로 바뀌는 변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정말 솔직히 최악이었다.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이길 간절히 바랐건만,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는 것인지. 야속하게도 연우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연우의 소개팅남이 맞았다.


지금까지 연우의 경험에 의하면 첫눈에 너무 호감이 안 가면 정말 반전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어쨌거나 기왕 만났으니 최대한 만나는 시간만큼은 예의 있게 행동하자고 마음먹고 있는데 그는 더욱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을 했다.

“혼자 사업하는 저보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회사에 같이 일하는 여직원들도 있으니 훨씬 여자랑 접할 기회도 많잖아요. 친구들한테 소개팅 시켜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한 번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나저나 저랑 3살 차이밖에 안 나시는데 정말 동안이시네요. 연우 씨랑 비슷한 나이의 분을 전에 소개받은 적이 있었는데 외모가 좀… 연우 씨와 너무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 후로는 조금 나이 차가 나는 여성분을 소개해달라고 했었는데. 핫핫.”

“아, 네…”

굳이 대놓고 ‘나이 든’ 여성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 여성’을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연우 앞에서 할 필요가 있었는지. ‘동안’이라는 칭찬에 감사하다고 하기에는 앞뒤 맥락이 영 찜찜하고 뭐라고 반응을 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미안하지만.. 그렇게 헬멧을 쓴 듯한 헤어스타일에 변색안경을 끼는 남자를 나이 차 나는 젊은 여자들이 좋아할지…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는 더 가관이었다.

“연우 씨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어디세요?”

“○○동이예요.”

“아 그렇군요. 혼자 사시나요?

“네. 회사 근처로 독립했어요.”

“아하 그러시군요. 혹시 그럼 뭐 전세이신가요?”

“아니요, 월세예요.”

그는 단박에 실망한 표정이었다. 나이 들고 소개팅을 하다 보니 어느 동네에 살고 매매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등으로 상대의 경제력을 파악하고자 하는 경우들이 꽤 있었다. 만남을 위한 전제조건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모양인데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연우도 동의하지만 첫 만남부터 노골적으로 그런 질문을 받으니 어쩐지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사실 연우는 목돈이 다른 곳에 일시적으로 묶여있을 뿐이지 지금 임시로 살고 있는 작은 오피스텔을 전세로 살지 못할 형편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혼자 사셨어요?”

“얼마 되지는 않았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본가는 어디세요?”

“○○동이예요.”

순간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연우의 본가가 상급지에 속하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 혹시 ○○ 아파트? 혹시 거기는 전세인가요, 매매인가요?”

이런 질문은 왜 하는 건지… 연우의 부모님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은 맞았지만 헬멧남이 생각하는 고급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개팅을 오랜만에 해서 연우가 감이 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요즘의 트렌드 라면 어쩐지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는 돈이 좀 있는 여자를 찾으러 나온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를 쭉 들어보면 그는 사업하면서 알게 된 자신보다 훨씬 돈 많은 재력가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 어떤 형님과 가까운 사이라는 둥, 묻지도 않는 인맥 자랑과 함께 그 형님이란 자가 누리는 것들을 부러워하는 말투로 자꾸 말을 했다. 또한 본인이 살고 싶은 동네와 아파트가 있는데 아직 사업이 궤도에 오르진 못해서 거기까지 가진 못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돈 좀 있는 여자를 만나서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곳에 집을 마련하는데 보템이 되었으면 했던 것 같고, 연우가 본인 기준의 재력과 조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런 질문들은 차차 사람을 알아가면서 천천히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 본 사이에 사람을 알아보기도 전에 너무 연우의 얼굴에 가격표를 매기고 있는 것 같아 영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이 남자는 완벽하게 아웃이었다.


연우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저, 죄송한데 생각해 보니 제가 선약이 있었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친구가 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요?”

사실 만난 지 한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연우는 거의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정말 오랜만의 소개팅인데 실망스러웠다. 혹시나 하고 나갔지만, 역시나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또 기회가 있을까?


연우의 앞으로 손을 꼭 붙잡은 연인이 걸어갔다. 도대체 다들 어디서 그렇게들 짝을 만나는 건지 연우에게는 그것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처럼 느껴졌다. 인연을 만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다. 때가 되면 운명처럼 사랑이 다가오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게 되고 때가 되면 아이를 낳고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때가 되면 그냥 이루어질 줄 알았던 게 어디 사랑뿐인가.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가 않았다. 때가 되었다고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도대체 그 때라는 것이 언제인지, 혹은 오기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삶은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인연이 아닌 사람과는 안 되는 게 맞는 건데, 그냥.. 소개팅이라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연말을 맞아 쨍그랑 쨍그랑 군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안타깝게 올해 크리스마스도 솔로로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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