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일까

by 구키

여느 회사들이 그렇듯 연우의 회사에서도 이맘때쯤 이면 인사 평가가 실시되었다. 임원 인사가 발표되기까지 부사장이 얼마나 안절부절 하며 감정 기복이 컸는지 부사장에게 보고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에게 있어 재임용되는 것은 지상최대의 과제였기에, 단기간에 자신을 돋보이게 해 줄 일들에 집중했고 오너에게 올릴 보고서를 위해 직원들을 닦달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회의 도중에 소리를 지르며 보고서를 던진다던가 회의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화를 내며 나가버린다던가 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직원들에게는 분노조절이 안 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반면, 가끔씩 회사의 오너인 회장이 나타날때면 비굴할 정도로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다 못해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나름 많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꿈인 임원 자리까지 올랐으면서 저렇게까지 비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매일 운전기사가 딸린 검은 세단을 타고 회사를 오가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지만, 도대체 저 모습이 소위 말하는 성공한 자의 모습인 건가? 이런 모습은 연우의 상사인 강정훈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사고방식은 위에서 아래로 답습되는 것 같았다. 그 자신도 갈망했던 위치로 가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고 누군가 함부로 대했던 경험도 꽤 있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본인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자괴감과 스트레스를 부하직원들에게 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저걸 저렇게 푸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나름대로 높은 위치에 올랐지만 이들의 분노조절장애와 지나친 강약약강의 태도는 낮은 자존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연우는 그들이 그토록 붙잡고 싶어 하는 삶이 그다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떨려 나갈까 두려움에 난리부르스를 추던 부사장은 이번 임원 평가를 무사히 통과해 자리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부하직원들을 괴롭게 했을지언정 윗사람들에게는 잘 보였는지 얼마 후 강정훈 팀장이 실장으로 승진했고 부사장으로부터 직원 한 명을 더 뽑게 해 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안타깝게도 김윤철 과장은 올해도 승진을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현주 대리가 과장으로 승진을 했다. 김윤철 과장은 동기들에 비해 이미 승진이 조금 늦은 상태인 데다, 올해의 실적이나 기여도를 놓고 보았을 때 승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였는데도 결과는 그랬다. 태서린 차장은 느닷없이 총무팀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녀를 피곤해했던 강정훈 팀장이 밑작업을 한 결과 같았다. 이제 묵묵히 시키는 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직원들만 남아서 강정훈 팀장의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태서린 차장이 총무팀으로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연우를 붙잡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본인은 바로 이직하겠노라며 눈물을 쏟았는지 모른다. 태서린 차장 한 명이라도 사라진 것이 연우로서는 다행일 수 있었겠으나 총무팀은 태서린 차장으로 인해 곧 괴로워질 예정이었다. 어쩔 수 없다. 부사장이 총무팀장보다 강정훈 팀장의 손을 들어준 것을.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강정훈 팀장, 아니 강정훈 실장의 두 어깨가 쫙 펴지고 더욱 당당해지는 느낌이었다. 성공한 자가 갖는 여유라고나 할까.

“이현주 대리, 아니 이현주 과장, 잘 부탁해요.”

‘네에~ 실장니임~”

이현주 과장은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을 때마다 예의 그 눈웃음을 치며 콧소리로 감사해요오,라고 인사를 했다. 역시 줄은 힘있는 자에게 대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터였다. 평소에도 강정훈 실장의 말만 들을 뿐 그 외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본인 기분에 따라 듣는 둥 마는 둥 해왔던 그녀였기에, 승진을 하고 나서는 연우와 김윤철 과장 앞에서 더욱 ‘너희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듯 기세가 등등해졌다. 반면 김윤철 과장은 당연하게도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아 보였다. 그에게 있어 승진은 그간의 자신의 노고에 대한 사회적 인정, 지위, 그리고 가족에게 줄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로의 가능성을 내포했다.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승진 발표가 난 후 그는 더 이상 야근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정장 비슷한 단정한 차림새로 회사에 나타나 오후에 조퇴를 하거나 급작스러운 연차를 쓰는 날이면 태서린 차장은 그가 필시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연우가 듣기에도 그것은 꽤 합리적인 의심 같았다.


승진으로 기분이 좋았던 강정훈 팀장은 어느 금요일 저녁 연말을 맞아 회사 근처의 한 고깃집에서 팀 회식을 잡도록 이현주 과장에게 지시했다. 요즘 회식의 트렌드는 금요일을 피하는 것이건만, 역시 강정훈 실장은 센스가 없었다. 강정훈 실장이 도착하기 전 팀원들 사이에서는 최대한 그의 옆자리에 앉지 않기 위한 눈치 싸움이 있었다. 보통 회식 때 상사 옆에 앉고 싶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다리타기로 강정훈 실장 옆자리에 당첨된 연우와 박하은이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가운데 강정훈 실장은 팀원들에게 돌아가며 올해에 대한 소감과 새해를 맞는 각오를 발표하라고 했다.

“올 한해 실장님과 팀원들 덕분에 무사히 여러 일들을 잘 마쳐서 감사했고, 내년에는 더 개선된 프로그램으로 많은 VIP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마지막 순서였던 연우가 마지못해 발표하자, 강정훈 실장은 함박웃음 지으며 술잔을 들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다들 올해 수고 많았어요. 나 이런 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예전에 보면 부사장님께서 실장들 불러놓고 이렇게 시키시더라고. 여러분이 나를 잘 서포트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나를 위해 존재하잖아요. 그렇죠? 다들 치얼스(cheers)!.”

아 정말이지, 팀원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즘 가득한 멘트하며 부사장이 하는 것을 보고 어지간히 임원 흉내 내고 싶었나보다. 김윤철 과장과 연우는 질린다는 듯한 눈빛을 조용히 주고 받았다.


회식 도중 화장실을 핑계로 연우가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고깃집 옆에 있는 피자 가게 직원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장사가 그렇게 잘되는 가게는 아닌 것 같았는데 회사 근처에 있는 가게다 보니 가끔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마주치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젊은 남자였다. 그의 티셔츠 등쪽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진심, 열정, 꿈을 토핑 하다.’ 진심, 열정, 꿈… 연우가 동경했던 단어들이다. 지금도 뭐 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삶에 찌들어 가고 회사에 찌들어가지만 다른 시도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 전철을 밟게 될까 봐, 그 ‘꿈’이라는 것에서 멀어질까 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인 걸까? 꿈을 이루는 것도 결국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는데. 꿈을 이루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늦은 시간 회식을 마치고 터덜터덜 걸어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옆집 아저씨가 연우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이구, 지금 퇴근했나 봐?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뭐 힘든 일 있어요? 젊은 사람이 왜 세상 다 산 표정이야?”

“예에.. 뭐..”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연우는 멋쩍게 웃었다. 언젠가부터 연우의 표정은 수심이 가득할 때가 많았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가족에게도 예민해지기가 일쑤였다. 이런 환경에 오래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밤 당장 이력서를 업데이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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