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영원하다, 그 맛도 그 사랑도
어릴 적 초등학교 방학을 하면, 동생과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가곤 했다.
9살, 10살 남짓의 어린 손녀들을 마주한 노년의 할머니는 바지런히 갓 지은 잡곡밥에 콩자반 등의 반찬을 내어주다가도 꼭 여쭤보곤 하셨다.
"닭 먹을래?"
케첩이 있고 노릇한 소시지가 있는 밥상이 최고의 식사 같았던 그 시절의 우리는 할머니의 그 물음은 마치 초코 아이스크림이라도 제안한 듯 설렜고 크게 고개를 끄덕여댔다.
키도 체구도 많이 움츠려져 있던 할머니는 굽이굽이 무릎과 등을 굽히고 천천히 집에서 가까운 시장에 다녀오셨다.
그 당시 그 동네의 시장에서는 마치 백숙처럼 멀겋게 끓여 낸 닭 다리를 팔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 닭의 다른 부위는 어쩌고 허벅지 살을 포함한 다리만을 그렇게 팔았을까 의아하지만,
큼직한 대파와 함께 전분기가 낭랑히 녹아있듯 걸쭉한 닭 다리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꽤 매혹적이었다.
마치 분식집에서 포장한 듯, 스티로폼 접시 위에는 허옇고 걸쭉하며 큼직한 닭 다리 4개가 달큼한 진물을 뿜어내는 대파와 놓여 있었다.
투명한 비닐로 여러 겹 덮어있었지만 닭 다리의 그 진한 향기는 숨겨지지 않고 할머니가 달랑달랑 들고 온 검은 봉지 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매불망 할머니만 기다리다가 (아니, 어쩌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닭 다리만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오시면 무릎까지 꿇은 채 오로지 닭 다리만 들어있는 그 비닐 속을 요란스레 펼쳐내며 꺼내 먹던 어린 시절 추억이 종종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데, 브라운관 속 할머니처럼 내 할머니도 닭이라면 한 가지 요리 형태만 떠올리셨던 것 같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난 그 닭 다리를 내심 기대하고 기다리며 할머니 댁에 가곤 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때때로 각종 시즈닝과 소스의 향연이 펼쳐지는 요즈음의 치킨의 맛에 취하는 와중에도 나는 종종 그 멀건 닭 다리의 맛이 떠오른다. 닭 자체에서 우러나는 진국과 연하고 담백한 살로만 승부를 보는, 진액이 끈끈하고 달큼한 맛의 대파를 곁들여 나오던 닭고기의 담백한 맛.
지금의 나는 각종 자극적인 맛들 속에 살지만 문득 향수처럼 떠오르는 건 그 단출한 닭다리의 맛이다. 담백하면서 꾸밈없이 순수했던 그 맛은 아마도 삶과 시대가 복잡해질수록 더욱 그리워질 것이다.
닭 요리라면 한 가지밖에 모르시던 그 시절의 내 외할머니.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은, 투박하고도 진했던 할머니의 사랑을 닮아있다. 솔직하고 진정했던 많은 것들은 영원함을 남긴다. 클래식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