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를 위해 살기 -1

첫 번째 - 내면의 자아와 만나기

율이가 다니는 특수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늘 자주 오는 통신문이지만 육아코칭상담을 원하는 엄마를 위한 상담프로그램을 신청하라는 통신문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면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하려는 열정맘이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신청했다. 다행히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치료센터에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횟수는 총 6회였는데 치료사가 육아코칭을 받을 것인지 자신에 관한 상담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보통 다른 학부모들은 육아 관련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나도 생각해 보니 수년간 다녀온 치료센터에서나 타 여러 교육에서 늘 육아 관련된 교육은 많이 듣고 있었다. 그렇다고 크게 육아가 나아지진 않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상담은 없었던 것 같아 이참에 상담해 보면 좋을 것 같아 내 상담으로 하겠다 했다.


처음 상담소에 들어가 무엇을 상담받고 싶으냐에 질문에 나는 미리 준비해 놓고 간 것도 없었는데 결혼생활 이야기가 정확히 말하면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당연히 매일매일이 스트레스고 전쟁인데 나는 육아코칭은 아니더라도 아이 때문에 힘든 심경을 토로할 줄 알았지만 나의 마음속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15년간의 결혼생활 동안의 길고 긴 스토리를 짧은 50분간 털어놓을 순 없었지만 인내하고 참아왔던 울분들이 아우성치며 조금씩 내 입술로 뱉어졌다.


상담사는 충분히 공감해 줬고 이해해 주었다. 그동안 누구에게 제대로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던 짐들을 살며시 보여준 것만으로도 나는 위안이 됐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첫 상담은 그렇게 시작했고 상담을 거듭하면서 내면의 힘이 조금씩 생기는 듯했다.


마지막 상담 때 내게 나무를 연상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상처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했다. 나의 머릿속 나무는 크고 우람했고 껍질은 윤기가 흐르고 싱싱하고 건강했다. 상처가 있다고 상상하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무에 생채기를 냈지만 내 머릿속 나무는 금세 아물어져 버렸다. 그리곤 종이에 나무를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 크고 우람하고 푸르렀던 나무를 커다란 종이에 그렸다. 그리면서 이 나무가 왠지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는 이렇게 큰 나무를 상담하면서 처음 본다며 감탄했고 그 나무는 나의 내면 속 '나'라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그 나무와 만났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내면의 나무는 앙상하고 볼품없고 잎도 없을 줄 았았다고 상담사에게 말했다. 근데 나의 나무는 나의 예상과 반대로 너무나 건강했고 잎들이 울창했으며 많은 그늘을 선물로 줄 수 있는 아주 커다란 나무였다.

아픈 아이를 키우면 가족들에게 위로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나 반대로 내가 위로를 해주는 입장이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알고 있었던 상담사는 이렇게 크고 듬직한 내면을 가져서 사람들이 기댔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내 마음은 생생하게 감동스러웠고 반가웠다. 일평생을 찾아 헤맸던 진짜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순간부터 늘 뭔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기엔 내가 약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얇은 막을 내 눈에 덮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48년간을 살아오고 있었고 나는 늘 뭔가 답답함을 느끼면서 살았다. 숨 쉬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분명히 나는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내가 아닌 느낌.... 마치 내가 매트릭스 안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요즘 과학에서 유행처럼 대두되는 양자역학이나 평행이론 쪽 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가 흐릿흐릿했다. 진짜 나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었다. 하지만 진짜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엄마가 원하는 대로 결혼해서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이렇게 나를 만난 것이다.


나는 그 그림을 간직하고 싶어 집에 가져왔다. 그리고 종종 그 그림을 일부러 찾아본다. 힘이 들 때 진짜 나와 만나 위로받고 싶을 때 말이다. 그러면 힘이 난다.


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연약하고 힘없고 불쌍한 내가 아니었지. 나는 이렇게 울창하고 멋있고 우직한 나무였지. 그리곤 미소 짓는다.

나라는 사람은 강했고 변함없으며 싱그러웠다. 모진 인생의 고통의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준, 잘 버텨준 나의 나무에 감사함과 어떤 뿌듯함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나'인 '나무'를 한번 더 바라보고 쓰다듬어본다. 마치 나를 쓰다듬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변화의 시작은 한걸음 더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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