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의 여름방학

나의 수행기간

율이가 여름방학을 했다.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벌써 3번째 여름방학이니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연으로 16년째 살아가고 있는 율이는 여름방학만 9번째인데, 유독 이번 방학은 뭔가 다르다. 보통 방학이 되면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율이의 널뛰는 감정기복이 안정화된다. 근데 이번 방학은 그 반대다. 올해 중학교 3학년 1학기 학교생활은 초 1학년 1학기를 제외한 모든 학년보다 월등히 잘 해내었다. 학교에서 핸드폰을 포함 어떤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수업에 잘 참여했다. 그리고 늦은 등교시간은 앞당기진 못했지만 하교시간을 1교시 늦췄고 도전적 행동으로 호출받은 건 딱 한번뿐이었다. 덕분에 율이가 학교에 가도 불안감에 긴장하고 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할 수 있었다.


그. 러. 나 내가 너무 긴장을 안 했던 탓일까? 오히려 방학을 하니 짜증 부리는 횟수는 확 늘고 도전적 행동(핸드폰 던지기. 자기 몸 때리기, 에어컨에 물 뿌리기. 엄마 때리고 싶어 등 말로 화풀이 하기 ) 도 나오기 시작했다. 방학시작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서 말이다. 방학 전 한 달간은 거의 화가 안나는 듯 늘 미소를 머금은 맘씨 좋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평온한 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원래도 더위는 못 참는 성격이니 살인적은 폭염의 탓이겠지 생리할 때가 돼서 예민해진 거겠지 싶었다. 그래도 직접 물어봤다. 대답은 지루해서였다. 방학한다고 마구 설레고 뭔가 재미난 일이 있겠다 싶었단다. 1학기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즐거움이란 커다란 포상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늘 해오던 패턴이 달라지는 변화에 율이는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방학하면서 매일 학교 있었던 시간 동안 집에 있으면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할 것을 대충 염려하긴 했었다. 그리고 지루해할 것을 대비하여 이미 하루에 한 번은 외출할 일을 만들어서 나갔다 왔다. 하지만 가벼운 외출은 자신의 기대치에는 못 미쳤던 것 같다. 또 최근 아이가 보여온 안정적인 모습 때문에 더 예측을 못했던 것 같다.


오늘도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고 쉽게 시원해지지가 않자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눈썹을 만지다가 뽑기 시작했고 “엄마 때리고 싶어” 말하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바로 “미안해”사과를 했다가 바로 또 화를 참지 못하고 발로 차기를 반복했다. 나는 방학을 시작하면서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것도 부담이 된 데다 정신적으로 계속 신경 써줘야 하는 게 상당히 스트레스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늘 아이의 짜증에 눈물이 나올 것처럼 힘이 들었다. 오늘 보여준 도전적 행동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행동들도 감당해 낸 나였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케어스트레스 때문인지 예전보다 더성장해 온 율이지만 많이 힘들고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율이의 화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과거와는 다르게 단호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니는 센터에서도 이제는 율이가 수용적으로 변화했으니 단호하게 선을 그어줄 때가 되었다고 조언받기도 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나의 요즘 힘든 심리상태에서 단호함을 보여주겠다고 한 말이 “너 자꾸 그러면 사준기로 한 거 안 사줄 거야. 멈추면 사줄 거야. 이쁜 행동을 해야 사주고 싶지”였다.

보통은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다. 말투도 더 부드럽게 하고 단어선택도 신중히 한다. 근데 오늘은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평소와 다른 게 단호하고 건조하게 대했다. 아이에게 한 말들은 대체로 협박처럼 들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아이의 화는 소강상태였을 뿐 마음속에 그대로 쌓여있는 상태였다. 일단 집까지는 어떻게 왔고 오후 동안은 별 탈 없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걷기 운동하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일이 생겼다. 맨발 걷기 중에 있던 한 할아버지를 향해 휴대폰을 던진 것이다. 다행히 할아버지 신체에 닿진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매우 불쾌해했고 핸드폰 액정에 금이 갔다.

율이의 분노 표현은 처음엔 부정적 말로 시작하다 자기 신체 공격(자해), 그다음 타인의 신체에 대한 공격이나 타인의 물건을 훼손시키는 순서이다. 시율이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단호할 땐 단호해야 하는 게 맞지만 오늘의 시율이에게는 단호함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시율이를 받아주는 게 더 필요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방학하면서 나의 긴장감도 너무 풀어졌고 아이가 곧 고등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빠른 성장을 요구했던 것 같다.

수용성이 좋아졌다고 판단했지만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아직은 더 받아주고 품어줘야 이 아이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최근 율이가 보여준 의젓한 모습에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아이는 여전히 아픈데 말이다. 아직은 단호함은 짧고 굵게, 따뜻함은 넓고 크게 베풀어야 함을 또 아이가 예전에 비해 많이 성장하고 있음에 더 감사해하기로 했다.


나의 이런 마음가짐이 아이의 도발적 행동에도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아이는 다시 편해져 지는 것 같았다. 물론 방학 동안 아무리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한다 한들 날마다 새롭게 즐겁긴 어려울 것이고 그때마다 아이의 불편한 심기를 내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아휴 힘들다는 마음 대신 율이 힘들구나 내가 알아줄게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품어주어야겠다 또 마음에 새기게 된 화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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