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발걸음 3

과거의 나 용서하기

나답게 살아야겠다고 진짜 나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한 후 가장 변화하고 싶은 것은 내내 꾹 눌러왔던 감정들을 표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참기만 하고 싫은 내색 못하고 살아왔던 나는 ‘싫다’라는 말을 한다던지, 그 비슷한 의미로 뭔가 상대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고 정말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상대가 내게 부정적인 언사나 선을 넘는 부당한 요구, 나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태도 등 여러 형태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 나는 상처를 받는다. 굳이 ‘상처’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내 감정은 당연히 불편감을 느낀다. 그러면 그때 나도 불편함을 드러내야 하는 게 마땅하나. 나는 늘 그런 뜻이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을 하거나 상대가 편하게 느끼는 방향으로 양보를 하게 된다. 좋은 말로는 갈등을 야기시키지 않으려는 평화주의자이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찝찝하게 남아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켜켜이 쌓이다 못해 이제는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조차도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심리상담소에선 이런 내게 거절이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상담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연습할 기회가 생겼다. 아이가 학교에서 사고를 쳤고 그 과정에서 나는 전후 사정 설명 없이 아이 잘못만 강조하는 담당 선생님의 딱딱한 태도에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어쨌건 사고를 친 거 내 아이였기에 불편감을 표현할 충분한 자격요건이 성립되는지에 대해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로 부터 학교라는 거대한 권력은 결정적일 때 늘 책임을 최소화하고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여왔었다. 나는 오랫동안 같은 문제로 반복적으로 고민을 해왔던 터라 어렵게 결단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담임 선생님에게 이러한 부분은 납득이 잘 안 됐고 과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울음을 꾹 참으며 창피하지만 부르르 떠는 목소리로 전달했다. 담임 선생님은 상당히 선생님다운 태도로 예민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던 학교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불편감이 내려갔고 여러 자책감과 피해의식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 한 번의 경험으로 그 다음번의 연습은 더 쉬워졌다.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그냥 받아들였으면서 내가 상대를 역공하면 분명 나를 싫어할 거라 여겼지만 주변 지인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공격’이라고 여겼던 말들도 그냥 그들의 서투른 감정 표현이었고 그게 싫었다면 싫다고 표현하면 됐던 것이었다. 그걸 싫어할 사람이라면 사실 거리를 두면 그만인 것을,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넘기 힘든 산은 남편이었다. 나는 남편의 분노하는 눈빛과 거침없이 쏟아내는 잔인한 말들과 폭압적 태도에 신혼 초부터 주눅이 들어있었다. 실제로도 사업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생활비를 가져오지 못하는 달이 많았고 그 화살은 나와 아이에게 돌아왔다. 남편이 화내기 전에 해결하려고 내 보험금이나 적금을 해지했고 그 마저도 안돼 아이 보험금을 인출하기도 하고 시댁에 사정을 하곤 했다. 그래도 그는 늘 예민해 있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같았다. 자신이 퇴근하면 나는 아이와 놀이터에 있다가도 집에 들어가야 했다. 주말엔 아이와 둘이 외출을 못하게 해서 남편 옆에 붙어있어야 했다. 남편이 옆에 있을 땐 상대가 엄마라도 전화 통화를 하면 화를 냈다. 또 자기가 없을 때 아이가 살짝 다치는 일이라도 있었다면 “너 전화하고 있었지? 통화하느라 애 안 봐서 다치게 했지?” 이런 식의 화법으로 나를 비난하고 몰아가는 게 일상이었다.


아이가 다섯 살쯤 됐을 때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화를 많이 내냐고 참다 못해 한마디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니 얼굴만 보면 화가 나”라고 답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고 했다. 아이가 장애가 된 것도 주 양육자가 너 이기 때문에 니 탓이고 자기가 화가 나는 것도 '내 탓'이라고 했다. 나는 비난받는 게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어 무조건 남편 말에 나를 맞췄다. 남편이 하라는 대로 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또 내 탓을 했다. "네가 그렇게 하라며" 억울해서 말하니 그는 내게 “너는 내가 죽으라면 죽을래?”라고 말했다.


결국 그에게 나란 존재는 그저 화풀이 대상, 감정 쓰레기통일 뿐 아내가 아니었다. 그에게 붓는 나의 헌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서적으로 고통당했으면서도 최근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혼은 쉽지 않은 선택이고 그렇다고 예전 방식으로 계속 살자니 숨이 턱턱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용기를 내어 감정을 드러낸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내가 속 좁은 여자로 귀결 됐고 진지한 대화 자체에 분노했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대화방식으로는 소통이 되지 않은 사람임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공감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회생활은 아주 훌륭하게 잘 해내고 젠틀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가족들에게 특히 우리 모녀의 고통은 전혀 알아차리고 있지 않음에 나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나는 그가 단순히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맘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한 것이고 분명 속으로는 죄책감과 후회감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자기는 선을 지킨 것이고 다 계산으로 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 글로 차마 그가 한 행동들을 다 나열할 순 없지만 학대라 할 만큼의 많은 행동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죄책감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러함에도 나는 내가 살려면 말을, 표현을 해야만 했다. 나와 내 딸을 지키기 위해서 더 이상 내 딸에게 손찌검을 하지 못하게 해야 했고 정서적 학대를 멈추게 해야 했다. 함께 딸은 낳았지만 우리 딸이 아닌 내 딸이기만 한 것 같은 이 이상한 상황이 말이 안 되지만 어쨌든 나는 나와 율이를 지켜야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의 눈빛 말투, 폭력적 언어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부터 했다. 새벽마다 속이 답답해 눈이 저절로 떠졌고 그때마다 일기를 쓰고 기도하고 명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용기가 조금씩 생기게 되고 그러지 말라는 말을 작은 목소리라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나의 말보다는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당황하는 거 같았다. 예전엔 자긴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고 좌불안석이었던 여자가 자신의 눈치를 덜 보자 거꾸로 내 눈치를 보는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남편이 순하게 변했구나 싶어 다시 잘해주고 싶고 맞춰주려는 마음이 생기자마자 그는 예전처럼 나를 조종하려고 들었다. 현재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 무한 반복 중에 있다.

그러함에도 나는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변하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남편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미련을 내려놓게 됨으로 희망이 보인다. 그가 좋은 남편 자상한 아빠가 돼줄 거라는 어떤 기대감도 희망도 없으니 그가 더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노력이 가상하거나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이 드는 순간 그는 다시 본성이 튀어나옴을 오랫동안 당해봤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남편을 내 남편이 아닌 그저 한사람의 인격체로만 생각하고 대하려고 한다. 나에게 남편이라는 존재는 원래 매우 크다. 집안의 가장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늘 그를 섬겼다. 하지만 이런 나의 순종적 태도가 나를 옭아맬 줄은 몰랐다.


오랫동안 남편이 안쓰럽고 불쌍했다. 남편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사는 건 나였지만 어쩌다가 저리 괴물이 됐을까 싶은 마음에 그를 내가 구원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를 아무리 밟아도 내가 그를 감싸주고 사랑해 주면 거센 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살에 외투를 벗은 나그네처럼 그가 마음을 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절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심성 변화는 내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임을 나는 이제야 인정하고 고백한다. 또한 나와 그는 다른 인격체임을, 그의 마음의 고통을 내가 아무리 짊어지고 가도 내가 그가 될 수 없다는 것, 나는 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무리 나에 대해 모르고 내 글을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읽는다 하더라도 남편의 허물을 드러내고 내 상처를 보인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이 내면의 깊은 아픔과 고통을 어떤 식으로라도 표현해내지 않는다면 나는 성장할 수 없기에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나는 남편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또 모든 것은 남편 탓이고 나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피해의식도 가지고 싶지 않다. 나는 진정으로 그를 용서하고 축복을 빌어주고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면서도 나를 잃지 않고 꿋꿋이 버터 준 나 자신에게 고맙다는 칭찬의 말과 모든 것이 정말로 내 탓일지 모른다고 자책하고 비난했던, 혼란스러웠던 나 자신을 용서하고 흘려보낸다.


그리고 어쩌면 남편보다 그 어떤 타인보다 나를 무시하고 미워했던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늘 남이 먼저였고 타인의 감정이 중요했던 나는 가족이든 친구이든 누굴 만나든 진심이였다. 그리고 정작 나는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나를 돌봐주기를 바랬지만 이제야 알았다.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이세상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것을...지금에서라도 나는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주기로 다짐했다. 아무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이다. 그 자기 사랑속에서 나의 외로움과 공허함은 채워져갈테고 진짜 나와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그 사랑이 다 채워져 진짜 내가 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영혼을, 나의 내면을 믿고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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