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키우는 육아 일기
글방에 참여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벌써 1년이라니. 노트북 바탕화면에 만들어놓은 글방 폴더에는 그동안 쓴 글이 차분하게 쌓여있다. 제목을 하나씩 읽어보니 잠들어 있던 이야기가 깨어나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것 같다. 그 아프고 슬프고 우스웠던 이야기 상자를 얼른 닫아 버렸다. 퇴고를 기다리는 불완전한 글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얼른 내빼버렸다.
1년쯤 되면 글쓰기에 습관도 붙고 어느 정도 내공이 생길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아니 나의 경우 그렇다는 거다. 처음 몇 달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온 인생이 있으니 그 속에서 글감을 찾을 수 있었다. 자기 이야기만 써도 누구나 책 한 권 정도는 쓸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기억 속에 저장돼 있던 인생의 각별했던 순간들을 어느 정도 풀어내고 나니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가끔 일에 쫓겨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쓰지 못한 핑계일 뿐. 뒤로 갈수록 마땅한 글감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다가 끝내 글쓰기에 실패한 것이다.
가끔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나의 평범한 일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도대체 무얼 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특별한 에피소드나 신박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에세이 쓰기가 힘들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코 소설 쓰기가 더 쉽다는 뜻은 아니다. 홍수가 무서워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격이라 생각한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지지부진한 글쓰기에 탄력을 줄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혹은 누구도 의뢰하지 않은 글을 써보겠다는 이 무용한 마음에서 시원하게 탈출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몇 달 동안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렸다. 버티다 보면 글이 써지는, 글쓰기가 쉬워지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이건 끈기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후자를 선택했다. 글방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했다. 1년의 세월은 느슨하게나마 습관을 만들어놓았나 보다. 글방 단톡방에 잠시 쉬겠다는 결심을 전하고 나니 이상한 죄책감과 불안이 몰려왔다. 열심히 쓰고 있는 글방 분위기를 흩어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어차피 다시 돌아갈 텐데 쉬어가는 선택이 맞는 걸까?
한 달이 지나 보니 결론은 이 또한 답은 아니었다. 글방을 쉰다고 내가 여유롭게 자발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는 두 주가 지나기 전에 휘발되어 사라졌다. 오히려 균형을 잃은 자전거처럼 휘청댔다. 어느새 글방의 루틴이 내 일상에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 루틴이 사라지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 편히 쉼도 갖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매일 3시간 이상 독서, 1시간 이상 걷기, 틈틈이 가벼운 에세이 쓰기... 를 할 생각이었으나 그 무엇도 해내지 못했다. 운동도 독서도 들쑥날쑥, 가벼운 글은커녕 노트북에 한글창을 열었던 날이 손에 꼽았다. 완벽한 실패다.
하나의 희망이라면 완벽한 실패를 자각하는 순간 다음엔 당당하게 쉬겠다는 뻔뻔한 계획이 생겼다는 것이다. 잠시 쉬어가는 것에 죄책감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쉼을 맞이하는 태도를 갖는 것. 일종의 안식월처럼 말이다.
이제 글방으로 돌아갈 시간. 여전히 무엇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길 위로 나서본다. 먼 길 떠나는 여행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