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글
벌써 네번째 국민청원이라고 했습니다. 무관심으로 잊히고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해 또, 또 청원을 올린다고요. 그만큼 재수사를 간절히 원하던 어머니였습니다. 딸의 피해를 확신하는 증거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그 때 기분이 어땠냐'는 조사관의 물음에 딸이 작게 내뱉었던 '무서웠어요'라는 대답 한 마디.
평소에 사이좋던 친구였다고 합니다. 항상 주위에서 지켜보며 딸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고요. 그래서 참고인으로 소환된 주변인 모두 범죄는 당치도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입을 닫아 버린 딸은 어머니의 애원에도 '무서웠어요'를 다시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검찰 역시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을 했습니다.
이제 막 제 이름을 앞세워 스스로 기사를 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어머니께 호언장담을 했어요. "따님이 무서웠다면 무서웠던 거죠. 기사 쓸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1인 시위요? 당연하죠, 어머니께서 행동에 나서신다면 그것도 취재해 기사로 쓰겠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귀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외로운 여정에 같은 편은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기적같이 저를 만났다고요. 저도 어머니에게 기적이 되고 싶었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기사는 못 썼습니다. 증거가 없으니 불기소 처분된 건 당연했습니다. 과정에서 어떤 비리도 부조리도 없었습니다. 재판정 문턱도 밟지 못한 사건이 기사가 되려면 훨씬 더 많은 관문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보도가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맥 빠지는 결론을 들고 쭈뼛쭈뼛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아쉬워하시면서도 괜찮다고 해주셨어요. 와중에 저는 그 괜찮다는 말만 기억에 남기려고 애썼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어머니는 정말로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를 시작하셨습니다. 전 시위 현장을 취재해 기사를 쓰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기사가 안 될 테니까요. 어머니는 저를 포함한 기자들에게 시위 일정이 적힌 이미지를 메신저로 보내셨습니다. 며칠 단위로 오던 어머니 연락은 점점 뜸해져 명절 인사보다 드물어졌지만, 절대 끊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 단체에서 일하다 피해를 입고 단체의 미흡한 대처로 2차 피해까지 겪은 여성 분이 있었습니다. 역시 증거가 없어서 2차 가해를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분께 당장이라도 "기사 써서 공론화에 도움이 되겠습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신 이게 기소된 사건인지부터 따져봤습니다. 이번에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된 사건이었습니다.
또 못 쓰겠구나. 판단과 동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시청역 근처의 카페 화장실에 들어가 많이 울었습니다. 왜 이들의 사건은 항상 불기소 처분이 될까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은 왜 기사로 쓰기가 어려울까요. 불기소 처분이 돼서 다뤄지지 않는 건지, 다뤄지지 않아서 불기소 처분이 되는 건지 선후 관계를 알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없어서 수사가 종결된 건지, 수사가 종결돼서 증거가 미처 드러나지 않은 건지 역시 알 수 없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질문이 끝없이 쏟아졌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닦고 나와 말도 안되는 결심을 했습니다. '뭐가 됐든 피해자만 믿고 기사를 써 버리자'라고. 오기에 받쳐 그냥 써 버렸습니다. 당연히 옳은 결정이 아니었고 탈이 났어요. 즉각 단체의 항의를 받아 결국 단체가 요구한 문장으로 바꿔 정정보도를 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 피해 여성 분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제게는 스스로 저지른 일을 수습할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취재의 끝에서 무력함을 느낄 때가 참 많았습니다. 온라인 범죄를 인지한 시민 수백 명이 국민신문고로 사건을 신고했지만 신고 내역은 각 관할서로 흩어진 이후 수사가 흐지부지 됐습니다. 손을 벌벌 떨면서도 데이트 폭력 피해를 진술하러 경찰서를 찾았던 한 분은 일이 해결되면 연락을 주겠다더니 기별이 없습니다. 장애 등급을 못 받은 장애인이 도와달라고 사정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정정보도 이후엔 몇 달간 고민을 안고 지냈습니다. 또 그런 피해자를 만난다면 기사를 쓰는 게 맞을까. 그러던 중 연락이 끊겼던 피해 여성 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점심 식사를 제안하더니 회사 앞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파스타와 피자를 파는 아담한 식당이었습니다. 들어서니 가게 한가운데의 원탁 자리에 정말 작은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렇게 작은 몸으로 그 모든 일을 겪으려면 많이 힘들었을 테니 저 분만은 아니기를 찰나에 바랐을 정도로요.
카페로 자리를 옮기면 결국 사건과 기사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선약이 있는 척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고 먼저 작별 인사를 했어요. 그분은 좀처럼 인사를 받지 못하고 주저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블루베리 조각 케이크가 포장된 봉투를 내미셨습니다. 유일한 내 편이 돼 줘서 영원히 고맙다고, 두려움에 혼자 숨어버려서 미안하다면서요. 헤어진 후에는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와 함께, 반 년 만에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셨습니다. 무식하고 위험한 기사였지만 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원고가 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뚜렷하고 결백해야 피해를 인정 받을 수 있을까요. 피고인이 실형을 받게 하려면 얼마나 더 긴 과정을 감수해야 할지요. 본명을 드러내지 못 하는 작은 피해자를 또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그들의 편에 선답시고 질문만 거듭할 줄 알지,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