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상처에 대해

첫 글

by 전두엽

스물한 살 때, 같은 나이였던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습니다. 생전 친하지도 않았는데 지금도 그 아이가 나오는 꿈을 꿉니다. 기억 속 마지막 모습으로 크게 웃고 있어요. 회색 교복 위에 두꺼운 패딩 조끼를 걸치고, 긴 머리를 틀어올려 질끈 묶어 이마가 반질하게 드러난 모습이죠. 전 대체로 그 아이에게 찌질하게 굴어요. 죽은 줄 알았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그리웠다면서 울기도 해요. 꿈에서 깨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뭐라고 이런 꿈을 꾸나.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여름이나 겨울이 오더라고요.

한 해를 보낼 때마다 어려운 숨을 꼴깍 넘기는 것 같습니다. 허락된 수명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그 아이보다 여섯 번이나 더 생일을 맞을 수 있었는지, 참 요상한 세상이죠. 생일을 좋아하는 저는 매년 요란하게 그들에게 안부를 전하는데 정작 저를 사랑해 주던 큰 이모 소식은 19년째 들을 방법이 없네요. 근황이 기대되던 연예인도, 떼로 살해된 동물들도 모두 잘 '지내는지' 간절하게 궁금합니다. '지내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에서 벗어나 끝내 평안해졌는지라도요.

아무래도 남겨졌다는 이유로 사는 것 같습니다. 영원하지 못한 존재에게 나를 기대고 있다가 결국 그들이 곁을 떠나는 걸 겪어야 하니까요. 다만 이별에 당사자의 의지가 있었는지, 서로 암묵적 합의라도 있었는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럼에도 죽지 말라고 애원하는 일은 도저히 생략되지 않습니다. 결국 상처 나는 우리들은 잘 아물기라도 해야 할텐데요.

저는 결국 흉이 졌습니다. 상처를 돌볼 자격이 없다는 좌절에 빠져 있느라 치료할 시기를 놓쳐 버렸어요. 그러고 난 다음엔 몸에서 마음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양 발이 붙들려 있는 이상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다는 걸 마음이 깨달아서였을까요. 그랬던 마음을 이해합니다. 자유롭게 날아서, 죽은 이들의 안부를 불쑥 물을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도 감쪽같은 새살은 못 될지언정 흉터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서로 연고를 꼼꼼히 발라 후후 불어 주고 열이 도는 손바닥으로 반창고 위를 눌러 두길 바랍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실 끊긴 연처럼 마음을 허망하게 날려 보내지는 않길 바랍니다. 저도 마음을 되찾아 꼭 잡아 안고, 또다시 남겨진 누군가를 붙들기 위해 함께 남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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