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요즘 안 보이네! 어디 아픈가? 의 주인공이 내 남편이 될 줄이
일반실 뇌치료 집중실로 내려왔다! 늦장대응과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피웠던 나의 자존심이, 결국 엄청난 짐을 내게 떠 안겨 주리라는 예상 없던 현실에 직면했다.
길거리에서 쓰러져간 남편을 집으로 데려간 나의 경황없던 선택을 누구한테 하소연할까! 병원이 아닌 집으로! 집으로! 를 외쳤던 그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 한들 이제는 소용이 없다.
오물에 미끄러져 아찔했던 순간 필사적으로 남편의 뇌진탕을 막아내고 살아남은 것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사흘 만에 남편은 의식을 찾았고 전혀 편마비 증세 언어 장애 없이 뇌출혈 전문 치료실로 내려왔다. 재활치료 실에서는 재활이 필요 없다고 했으니 전생에 우린 덕을 누군가에게 베풀었음이 확실하다며 혼자 위안을 삼아 본다.
남편은 중환자 실에서 내려오자마자 푸푸.. 세수를 하며. 발도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닦아 냈다.
가슴을 쓰러내린다. 섬뜩했다. 또 사고터질까봐 무서웠다. 성격급함과 고집스러움은 여전하다.
나로 하여금 정신줄을 놓게 만든 행동들, 뇌에 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왜 저러지! 머리가 많이 아픈 건가?
이번 주일 25일은 남편 동문 모임인데.. 그런대로 컨디션이 정상인처럼 회복되어 내일이라도 퇴원 할거 같다. 몸이 성한 사람처럼 함부로 아니 겁 없이 행동했다..
동문들 주차장까지 다 챙기며 빠르게 카톡을 날렸다. 손이 날아가듯 빨리빨리 진짜 저러면 안 되는데.. 예약한 식당까지 인원 확인하며 주차장이 어떠니... 등 전화까지 저 사람이 다시 미쳐 버렸나! 하는 찰나였다.
집중실의 보호자는 잠들지 못하는 유령이 되어 스물네 시간 간병을 해야 한다.
4년 전 남편이 심장병으로 쓰러진 무시무시한 코로나 시절 서울 세브란스병원 심혈관 집중실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떨었다, 오뉴월에 풍맞은 사람처럼... 그 후 심장혈관 병원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시는 머무르지 않고 싶은 곳이다!
3년 전 소천하신 엄마도 광주 H병원에서도 그분 곁을 떠나지 않고 수발을 했다. 어머니 보살피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모두가 내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실 때까지 그분 곁을 지켰다.
하지만 병원에 빨리 데려가지 못한 것에 대한 어리석음의 혹독한 대가는 컸다.
뇌혈관 집중실에서 또다시 남편의 수발이라는 기막힌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중실에서의 하루 째 그런대로 남편은 하룻밤을 지냈다
병원에만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이 정상이다.
코를 골면서 잠도 달게 자고 있다.
그렇지만 난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간호사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카트 소리...
앞자리에 노인환자의 커튼을 확 젖힐 때 보이는 무서운 얼굴은 영락없는 염라대왕이다!
그 옆의 노인 환자의 코 고는 소리는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 속의 천둥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렇지만 넓은 집에서 혼자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남편이 살아서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는지, 아니면 내가 남편을 지키는지는 모르지만!
원래부터 식성이 좋은 그 사람은 저녁으로 나온 깨죽을 잘 먹었다.. 집에서 항상 먹었던 당근, 토마토, 사과를 전자 렌인지에 돌려 준비했다.
병실의 저녁 풍경은 늘 그렇듯이 혼란스럽다. 밥 한술 뜨려니 앞에 환자는 보호자가 없는 사이 대 소변을 범벅해 오물 가득한 냄새로 병실을 가득 채워 냈고, 또 다른 환자는 목젖까지 보이도록 입을 크게 열고 코를 골고 있다. 그래도 살아서 여기까지 왔으니 감사하고 행복하리라 다짐해 본다.
보호자가 잠시 비운사이 혼자 있는 환자에게는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친절하게 대소변을 다 치웠다. 자기 임무에 최선을 다할 때 인간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울산 병원 간호사, 보조 선생님들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부르면 언제 , 어디서든지 달려갔으며, 다정하게 미소도 잃지 않았다. 항상 그들은 뛰었다 달리는 로봇처럼...
옆 환자는 간호사들이 목구멍 가래 끄집어낸다고 꽥 꽥 아우성이며, 섬망증 환자는 알지도 못한 괴성을 지르고 있다. 병실은 그야말로 생의 야전병원에 전사들을 연상케 한다. 병실에 중증 환자가 있으면 다 그렇다는 것을 이미 3년 전 어머니 케어 하면서 봐왔던 생생한 장면들이다.
집중실 이틀째 수술은 잘되어서 염려는 없는데 미열이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환자를 얇은 여름옷을 입혀 가지고 콧물에 감기 기운 있는 모양이다. 환자에게는 감기가 독인데 대처를 못한 병원 측에 항의라도 하고 싶다.
밥한술 뜨려고 하니 앞에 환자는 대변을 싸서 난리고 그 옆에 환자는 가래 뽑는다고, 생 지옥이 따로 없다!
저녁에는 잠한숨을 잘 수가 없다.
이미 두 번이나 겪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눈을 붙였다.
사람이 살다가 마지막 길은 저렇게 고통스럽게 가야 하나
혼란스러운 순간들이다!
간밤에는 열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중환자실에서 5층 뇌출혈 집중실로 옮긴 후 열이 지속적으로 났다.
열이 나면 안 되는데 두통을 호소하며, 아이고 머리야! 머리야!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되었다! 코로나 검사, 독감 검사, 폐검사 다행히 이상이 없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집중실에서 이틀째부터 주렁주렁 매달아 지속적으로 투입했다. 소용이 없다.
무슨 이런 사람 잡는 병이 있을까? 뇌출혈 끔찍하고 무서운
병 말로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일요일인데 과장님 내진을 오셨다! 두통이 2주 정도는 간다고 한다.. 열만 없으면 되는데 인간사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열과 두통이 지속되었고 해열제도 일시적일 뿐 해결책이
없다! 간호사는 급 히 와서 검사한다며! 피를 잔뜩 두통 10cc, 저 아까운 피! 뽑아갔다 외래검사라 던데 일주일 뒤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1월 26일 월요일! 비뇨기과 검사 후, 신경외과 과장님 면담이다. 뇌에서 피 흘린 흔적이 거의 없고 피가 흘리 면서 고여있는 물도 다 잡혀 경과가 아주 좋다고 하셨다. "담주 월요일은 퇴원하실 거 같네요."그 말 한마디에 남편의 고통을 잠시 잊고 뛸 듯이 기뻤다.집중실에서 탈출 일반병동 521호로 이사했다. 2인실이 없어 예약을 해놨다
그것도 잠시 소변을 잘 봤는데 갑자기 장애가 생겼다.
비뇨기과 갔더니 저녁까지 참아 보자고 했다. 3년 전 팍스로비드 부작용으로 소변장애가 와서 고생을 많이 하고
소변줄을 2주 이상에 열나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트라우마가 덮쳐 왔다. 무서웠다. 또 그 고통을 겪어야 하나!
26일 오후 남편은 이전에 아프기 전보다 더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5분마다.. .아니 바로바로.. .힘을 또 죽도록 썼다.
남자 화장실을 같이 들락거렸다. 아무리 참았다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 사람이 또 정신이 이상해진 듯하다.
이번에는 내가 미쳐 버릴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소변줄을 찼다. 거의 2000ml 가까이 쏟아 냈다. 그렇게 많이 방광에 소변이 쌓였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함과 불쌍함에 눈물 났다.
소변줄로 인해서 화장실은 들락거리지 않아 마음이 놓였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다. 열이 오르니
혈압도 약간 높다.. 모든 것들이 힘들게 했다.
집중실에서의 사흘째 저녁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다. 온몸을 닦아주니 열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옆에 새로운 환자가 왔다. 끊임없이 마른기침을 해 되었다. 옮길까 봐 무서워서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감기 환자는 아니란다! 끝없이 저녁내~기침을 하던
그 환자는 폐암 판정을 받고 눈물 흘리며 대학 병원으로 간다고 하룻밤 자고 병실을 떠났다. 이런 곳이 병원이구나!
실감 나게 한다.
28일 화요일 남편은 머리가 쿡쿡 쑤신다며 ,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면서 잘 먹던 숟가락도 얼마 뜨지 않는다. 분명히 2주 동안 진통이 있다고 과장님이 말씀하셨는데 , 얘기해도 필요 없고 진통제를 투입해도 효과가 없단다.
코를 훌쩍여서 비염 때문인가 싶어 이비인후과를 갔다
이상이 없다고 한다. 여전히 남편은 짜증을 내며 머리는 아프고 , 열도 오르고, 속수무책인 이 상황에서 대신 내가 아팠으면 했다.
그날 저녁도 한숨을 잘 수가 없다. 침대 오르락 거리며 물수건으로 열심히 닦아 냈다! 손가락을 쥘 수 없을 정도로
아려왔다! 무릎이 아파 펴지도 못할 지경이다.
남편은 옆에서 지쳐가는 내 고통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고 째려보는 듯했다. 저 사람이 또 아픈가! 원래 자기 몸만 챙기는 사람인데, 이제는 내가 아파서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1월 29일 화요일 머리 통증 때문에 다시 CT를 찍기로 했다.
또 떨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과장님 면담은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2,3주는 통증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이제 남편은 살았구나!
1월 30일 금요일 딸이 맛있는 고기를 구워 온다고 한다.
남편은 금요일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다. 크리스천이라서
철저하게 금육일은 지키는 편이다. 남편이 잠든사이 밖에 간이 의자에 앉아 고기를 씹었다. 내가 살아야 저 사람을 살리지! 컨디션이 좀 나아진듯하다.
어젯밤에는 열도 괜찮아 눈이라도 부쳤다. 새벽녘에 미열이 약간 있다. 수건으로 적셨더니 열이 떨어졌다. 나흘동안 잠도 못 자고 설쳤더니 걸음을 걷기가 힘들다. 내 몸 역시 쇳덩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건강해야 저 사람을 보살필 텐데! 옆에 새로운 사람이 또 들어와 기침을 수없이 쏟아 냈다.
난 벌벌 떨었다. 우린 독감 코로나 검사 다 하고 왔는데 간호사실 뛰어가서 항의했더니 아마 독감이 아닐 거라고 했다.
4인실 들어오기 전 예약 했던 방이 금요일 오늘 나왔다고 한다. 울산병원은 4인실이라도 깔끔하다.
중이 절 보기 싫으면 떠난다고 우리가 이사하기로 했다.
이번이 네 번째 이사이다.
2인실이라서 조용하고 옆환자는 스물 한살의 군인이었다
역시 돈이 최고다. 옮기니 살 것 같다.
병원생활 열흘째 남편이 아프지만 않았더라도 뒷동산을 거닐며, 헬스장 들러 좋아하는 근육운동하고 마트 들려 장도 봐왔던 우리 들의 귀중한 일상들... 벗어 버리지 못한 안타까운 서글픈 현실에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적셔 내리고 있다.
누구는 운동을 잘한다는 둥 왜 그 사람이 요즘 안 보이지 어디 아픈가? 오순도순 얘기하면서 오르내린 참나무숲...
그 숲 속 길을 을 무던히도 걸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의 행복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 하였던가!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하던 이들은 우리 내외가 궁금할 것이다. 왜 요즘 늘 같이 다니던 부부가 안 보이지? 어디 아픈가, 그 주인공이 내 남편 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사람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보편적 논리라지만 나는 믿는다. 내일이면 이 어두운 터널도 끝이 날 것임을. 그곳에는 분명히 끝이 있으니까
병원에서의 열흘째 밤은 저물어 가고 있다.
작년에 우리가 머물렀던 꽃무릇이 피어 있는 등대 산책로, 슬도 해변가, 댑싸리 만발한 아름다웠던 슬도, 올해도 다시 찾으리라.
슬도 팜파스그라스류 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