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를 기다리던 마늘고추장, 감식초
'두릅'이라는 봄의 전령사를 만나 완성되는 과정.
by
김혜자
Apr 10. 2026
벚꽃은 지지만, 우리네 삶의 식탁에는 계절마다 또 다른 꽃이 피어납니다. 비 내리는 저녁, 향긋한 두릅향이 집안에 은은하게 퍼져
코끝을 녹여냅니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는 저녁, 뒷동산에 화려하게 수를 놓았던 벚꽃들은 잦은 비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꽃비가 되어 땅 위를 뒹굽니다.
분홍빛 잔해가 아쉬워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 식탁 위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엔 또 다른 봄이 완연히 피어 있습니다. 오늘 저녁 벚꽃은 비에 져도, 내 식탁 위에는 향긋한 두릅 꽃이 피었답니다.
지인이 보내온 귀한 선물, 두릅입니다.
가시를 다듬고 밑동을 깎아내며 거친 숨을 고릅니다. 하얗게 드러난 속살이 마치 겨울을 견뎌낸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손길이 한층 조심스러워집니다
.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니 코끝을 스치는 진한 두릅 향이 온 집안을 채웁니다.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이 내음은 봄비에 씻겨 내려가는 꽃잎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식탁의 주인공은 두릅이지만, 작년 가을부터 준비해 온 인고의 날들이 있었답니다.
볕 좋은 날 정성껏 담갔던
마늘 고추장
, 그리고 단지 안에서 묵묵히 익어간
감식초
. 가을의 햇살과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제 몸을 발효시킨 장과 식초가 만나 비로소 초장이 되었습니다.
지난가을의 끝자락에 담가 놓은 맛이 이제 막 고개를 내민 봄의 두릅을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알싸한 마늘 고추장의 맛 뒤로 감식초의 은은한 산미가 느껴지고, 마지막엔 두릅의 청량한 향이 입안 가득 머뭅니다.
지인이 건넨 따뜻한 마음과 내가 들인 정성이 어우러진 이 풍요로운 식탁 앞에서 비로소 지친 가슴이 치유되는 것을 느낍니다.
작년 늦가을 엿기름 고아 찹쌀고두밥을 지어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지인들에게 두루 나눠주고, 5개월 삭혀 초장을 만들었습니다.
풍성한 저녁, 진한 두릅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 봄비 내리는 저녁의 운치가 4월의 깊어 가는 밤을 달래 주는 듯합니다.
빗소리에 벚꽃이 지는 소리는 세월의 아쉬움을 남기지만, 코끝을 스치는 두릅향은 또 다른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가시를 다듬고 밑동을 깎아내어 깨끗하게 씻어 다듬어 소금물 풀어서 5분 정도 데쳐야 합니다
5분 정도 데친 두릅을 물기를 없애기 위해서 정성 들여 키친타월로 닦아 내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속살이 마치 겨울을 견뎌낸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친 흙과 단단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고서야 비로소 마주하는 순백의 얼굴. 모진 바람을 견디느라 겉은 투박해졌을지언정, 그 안에는 이토록 맑고 단단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야만 쫄깃한 두릅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향긋한 풍미를 살리기 위해 살짝 데쳐내어 두릅 본연의 식감과 향을 살렸습니다.
쓴맛을 줄이기 위해 데쳐낸 두릅을 물에 20분 정도 담갔습니다.
작년 늦가을에 꼭지를 따 발효를 준비한 발갛게 익은 단감.
부패 방지를 위해서 약간의 설탕을 넣었습니다. 설탕을 넣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겨 감식초 만들기 어렵습니다.
단지 속에서 가을 햇살을 머금고 익어간 감식초가 쌉싸름한 두릅의 끝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완전하게 발효된 감식초입니다. 시중에서 파는 감식초와 3:1의 비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감식초입니다. 3개월 동안 밀봉 했다가, 건더기는 건져내고 윗물만 가만히 따라내어 다시 밀봉하여 실온에 보관했습니다.
붉은빛이 많이 도는 것은 일반 고추장 약간 덜 붉은 것은 마늘 섞인 고추장입니다. 맛이 다른네요.
"마늘 고추장의 묵직한 매운맛과 두릅의 청량한 향은 40년 세월을 견뎌온 내 삶의 맛과도 닮아 있다."
엿기름을 고두밥과 삭혀 삭힌 후 건더기는 믹서기에 갈아 소스를 만들고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리는 과정입니다. 고추장 만드는 것은 우리 어머니들이 겪어온 인고의 세월 같습니다.
작년에 나눔 잔치했던 고추장
진한 두릅 향과 어우러진 이 풍요로운 식탁 앞에서 봄비 내리는 4월의 밤은 깊어가는 줄 모른 채 치유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작년 가을의 끝자락에 담근 마늘 고추장을 서울친구, 동네 친구들에게 나눔 잔치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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