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볶을까, 깨를 볶을까"

"잔소리 쟁이 남편을 위한 행진"

by 김혜자

"주방 가득 고소한 향기가 진동하지만 제 마음은 바싹바싹 타들어 갑니다. 옆에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은 남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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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이 적네, 깨가 덜 볶여서 맛이 없겠네' 상전 노릇을 하는 그를 보면.. 근냥 같이 확 볶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렁거립니다. 그런데도 왜 저는 남편의 하인 노릇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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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는 조청 위로, 고소한 깨를 쏟아붓습니다. 주방을 가득 채우는 남편의 잔소리도 이 끈적한 조청 속에 함께 버무려 버립니다. 조청의 부글부글 거림은 제 속마음 같습니다.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깨와 조청이 한 몸이 되듯, 징글징글한 우리 부부의 인연도 이렇게 달콤하고 끈끈하게 엉겨 붙어 있습니다.


'하인 노릇이 고되다 투덜 되면서도 제 손은 어느새 타지 않게, 깨알 하나하나에 윤기가 흐르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저는 미운 남편을 위해 고소한 깨강정을 빚고 있습니다.


조청의 깨알 하나하나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듯, 우리 부부도 그렇게 40년을 엉겨 붙어살았습니다.

잔소리가 싫어 도망치고 싶다가도, 이러면 안 되지 다시 고쳐 먹게 됩니다.

혹여 또다시 쓰러지면 어쩌나 안쓰러움에 하인 노릇을 자처하는지도 모르겠지요.

조청 끓여서 깨강정 만들기


오늘도 주방은 남편이 잔소리와 고소한 깨 볶는 소리로 소란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 사실 제가 진짜 볶고 싶었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를 향한 서운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강정 한입에 '우리 각시 최고 엄지 척"을 해주네요.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조청 녹듯이 녹아내립니다.


우리 부부의 인생도 깨강정처럼 씹을수록 달콤하고 고소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완성된 깨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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