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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훈 Aug 26. 2024

현실적인 엔딩

 


   '에밀리인 파리스'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인 에밀리는 마케팅 업무를 담당한다. 미국 시카고에서 프랑스 파리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겪는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 본 '에밀리인 파리스'에서 프랑스인 직원과 미국인인 에밀리의 대화가 내 관념을 흔들었다. 프랑스 직원은 '미국 로맨틱 드라마나 영화는 항상 해피엔딩이다. 난 그 행복한 결말의 미국식 이야기가 싫다'라고 한다. 그에 덧붙여 '프랑스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닌 현실적인 결말을 만들어 낸다. 비극적이고 실제 삶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고 난 후 내가 이때껏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미국영화는 동화 같고 행복한 결말의 영화를 많이 접했다. 그에 반면 유럽 영화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불편함을 감출 수 없던 작품이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확고한 취향을 알 수 있다. 난 예쁘고, 밝고, 경쾌하며, 따뜻함이 묻어나는 작품을 좋아한다. 피가 튀기고 어둡고 기분 나쁜 못생긴 괴물이 나오는 칙칙한 영화는 멀리한다. 책을 선택할 때도 희망을 심어주고 성공담을 들려주며 용기 북돋아 주는 책들을 읽는다.

나의 편향적인 안목과 삶의 방향이 지금의 긍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평범하고 특별한 근심 걱정 없이 살았다. 지루하고 우울했던 20대를 보내다 보니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성장하고 강해지고자 외국 생활을 자처했고, 굴곡지고 뭔가 드라마틱한 인생을 만들고 싶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슬기롭게 이겨내며 환상적인 삶을 펼쳐 내리라 믿었다. 타지에서 로맨틱 영화 주인공이 된 양 행복한 결말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한국을 떠나 오랜 시간을 외국에서 삶을 살았다. 나의 타지 생활은 아무런 드라마틱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긴 타지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됐다. 귀국 당시 나의 동화는 슬픈 결말도 행복한 결말도 아닌 그저 꿈속에서 현실로의 복귀였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항상 허한 된 꿈과 미래를 올려다보며 산 내 자신이 한심하다. 그저 희망을 품고 긍정적인 사고로 지내면 모든 게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될 거라는 로맨틱한 영화만 생각했다. 내 삶은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답답하고 우매한 내 자신을 한탄해 본다.

     한국으로 돌아와 현실로 복귀하기까지 긴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을 통해 소설이라는 장르를 접해보고 있다. 소설은 작가의 지어낸 이야기라는 정의가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나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삶에서 묻어나는 생생한 삶의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주로 에세이나 성공담의 책을 읽었다. 그러나 소설에 관해 공부하고 다양한 소설을 읽어 보며 책 고르기에 편식만 했던 내 판단이 아쉬웠다. 실화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설 역시 작가의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설도 역시 진실이 첨가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소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지며 소설을 좋아하고 좀 더 깊게 알고 싶어졌다. 나 역시 나의 삶을 소설 속에 풀어내고 싶다. 언젠가 내가 주인공인 소설로 나의 상상과 현실의 경험을 조합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

     글을 조금씩 써보며 결말을 어떻게 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 인들의 비극적인 결말과 미국의 동화 같은 행복한 결말 중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불현듯 인생의 결말은 무엇인가를 떠올려 보게 된다.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끝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의 삶 자체는 비극으로 끝맺음하는 것이다. 과연 행복한 죽음이 있겠느냐는 의문을 품게 된다. 죽음에 관해 깊이 상상해 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나타나는 형상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남겨진 자의 아픔 등이 그려진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작가로서 현실을 직시하여 앤딩을 써 내려 가는 게 답 일일까? 그것이 삶이고 모두가 의식하고 있지만 부정하고 싶은 인생의 결말을 말인 것을. 소설의 끝맺음도 인생과 다르지 않게 써 내려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항상 행복한 결말만을 꿈꾸던 난 이제 현실적인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불평등하고 고통 속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삶이고 인생인 것을 담담하게 풀어내 보고도 싶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 올라오는 행복한 결말들을 지워버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타고난 천성과 태도들은 쉽게 변화되지 않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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