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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훈 Aug 16. 2024

멜팅팟(Melting Pot)

    



멜팅팟(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에서 여러 인종·민족·문화가 뒤섞여 하나로 동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란 단어가 있다. 미국은 멜팅팟이란 단어와 정확히 상응하는 국가이다. 특히 뉴욕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사는 곳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뉴욕 주민 중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집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공용어는 영어지만 집에서는 부모의 언어로 소통을 주고받는다. 하나의 언어로만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광경일 것이다.


뉴욕에서 생활하면 전 세계 문화를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뉴욕주 안 소규모 도시엔 나라별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차이니스 타운을 가면 중국을 마주하고, 코리아타운을 가서 한식을 먹고, 라티노 거리를 걸으며 남미를 체험할 수 있다.

난 그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다. 내가 일하는 곳 또한 세계 각국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진 곳이다. 타이틀은 프랑스 레스토랑이지만 소유주와 헤드 쉐프 등 몇몇만이 프랑스인이다. 그 외는 직원들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른다. 여러 나라에서 모여 새로운 삶을 찾아  협력하며 구성원이 된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라커 룸에서 쉐프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외국인이 들어 왔다(그 친구에게 나 또한 외국이었겠지). 그곳에서 첫인사는 이름을 묻고 어디 출신인지를 궁금해한다.

신입 친구는 "이름이 뭐야? 어디 출신이야?" 난 "후니이라고 해, 한국에서 왔고 물론 남쪽이야"라고 했다.

여담으로 미국에서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은 있다. 가끔 그들은 북한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난 "그렇다"라고 농담을 던진다. "김정은을 아냐?"고 난 묻어본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은 "아 그 독재자' 하며 아는 척을 한다.

난 "김정은이 나의 형이다."라고, 그리고" 조심해"라고 경고한다. "왜?"냐고 물으면 나는" 내가 한마디만 하면 너희 집 박살 낼 수 있어. 미사일을 보내라고 할 거니까."라며 깔깔 웃어댄다.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 시키는 게 나의 대화 기술이다.

신입 친구는 북쪽에서 왔냐고 묻진 않아 내 소개는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난 그에게“네 이름은 뭔데? 어디서 왔어?”라고 그에게 물었다. 신입 친구는 “앨버트이고 텍사스에서 왔어”라고 답했다. 텍사스에서 자랐지만, 태어난 곳은 알바니아이고 그곳에서 초등학생 때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작은 얼굴에 비해 큰 눈망울과 곱슬머리, 그리고 우람한 체격을 가진 친구였다.

일을 함께 한지 며칠이 지나 그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내 첫인상이 어땠어?" 난 솔직히" 너 외계인인 줄 알았어."라고 답했다. 그 친구는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넌 나빠"라는 한마디와 함께 급히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짐작건대 친구는 좀 당황한 듯했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 친구는 성실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힘든 레스토랑의 일을 서로 도와가며 의지한 좋은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절로 생긴다.


내가 일하던 케이터링 부서의 대장인 ‘조시’라는 인물이 있다. 무표정에 머리를 빡빡 밀어 조폭을 연상케 하는 쉐프이다. 그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였다.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그 차가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무심한 척 챙겨주는 따뜻함을 소유한 분이었다. 사실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지만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쉐프이다.

어느 날 쉐프 조시는 내 나이가 궁금했었나 보다. 그는 "너 몇 살이야?"라고 물었다. 덧붙여"나 보다 어리겠지?"라고 했다. 난 뭐라고 말할까 망설이다. "쉐프님은 몇 살이세요?"라고 되물었다. 쉐프는 "78년생"이라고 했다.

난 “헉!”이란 단어와 함께 크게 웃었다. 난 "쉐프님 보다 내가 한 살 많아요"라고 말했다. 그 는 당황 하며 당장 아이디를 보여 달라고 한다. 난 라커 룸에서 아이디를 챙겨 살짝 보여주고 승리의 함박웃음을 날렸다.

그곳엔 동양인의 외모와 서양인의 외모는 큰 차이가 있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이 어려 보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서 나름 30대, 가끔은 20대 후반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도 듣곤 했다. 나이를 공개하고 난 후 레스토랑 내에서 한동안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옆에 있던 세컨드 쉐프 달리아는 “무슨 화장품 써?”라며 궁금해했다. “특별히 하는 건 없고 가끔 ‘마스크 팩’을 해”라고 답변했다. 한국 마스크팩이 유명했기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러움을 표했다.

달리아는 나를 너무 이뻐하는 선배 쉐프였다. 아랍계 아버지와 포르투갈 어머니를 두고 있는 보수적인 아가씨였다. 미국의 유명 스타 ‘킴 카다시안’에 대적할 만한 엉덩이를 가진 글래머이다. 서양 남자들은 넓은 골반과 풍만한 가슴을 최고의 섹시 여성으로 평가한다. 달리아는 그런 여성 중 한 사람이었다.

달리아는 나를‘후니 벌루니’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난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저 이름과 벌룬이라는 비슷한 발음의 조합인 듯하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일할 때는 나를 주인공으로 비디오 촬영을 종종 했다. 그 결과물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리곤 했다. 내가 주연인 비디오로 인해 달리아 친구들 사이에서 난 유명인사였다. 20대 후반의 아가씨지만 다정하고 정감 있는 그녀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


그 외에 남아프리카에서 온 잘생긴 백인 친구‘미치’, 깡마르고 키가 컸던 ‘조’, 이름도 이쁘지만, 외모도 아름다운 ‘로라’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규모가 크고 일하는 부서가 틀려 모든 사람을 알아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저 외적으로 '어디 출신이겠거니' 하며 짐작만 할 뿐이다. 이름 또한 도저히 기억하기 힘들 발음이어서 그저 ‘친구’라고 대신해 부르곤 했다. 


헤드 쉐프를 중심으로 한국인, 알바니아, 라티노 그리고 그 외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치열한 사투는 시작되었다.

처음 일을 같이할 때면 한 번씩은 충돌이 일어난다. 문화와 역사가 가지각색인 사람들이 어울리다 보면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겪게 된다. 그래도 같은 아시안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가끔 유럽 동료들과 일을 할 때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와 다르게 느긋한 행동들은 가끔 나를 분노하게 한다. 무슨 할 말이 많은지 자기네 언어로 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 장점이라면 가끔 한국 동료들과 우리나라 말로 남들 흉을 보거나 놀려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토요일 이른 아침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은 사우드 햄프턴(Southampton)에 있는 어마어마한 부자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출근 체크를 하고 곧바로 주방으로가 모든 동료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세계 각국의 인종이 모인 곳이어서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별의별 인사 표현을 사용한다. 난 그저 ‘Good Morning’이라고 한 후 동료들의 어깨를 살짝 쓰다듬으며 지나치는 것을 좋아한다.

저녁에 있을 큰 파티로 인해 평소와 달리 많은 인원이 케이터링 팀으로 와 일을 하고 있다. 난 나름대로 케이터링 팀에서 3년 정도 일을 했기에 고참이다. 헤드 셰프의 지시를 받아 간단한 일들은 말단 셰프들에게 일을 분배하고, 나는 그보다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한다. 프랑스 요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보여주는 눈요기가 좋아야 하기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메뉴의 순서는 보통 핑거푸드를 시작으로 첫 번째 코스는 애피타이저로 샐러드나 차가운 음식을 선보인다. 두 번째 코스는 수프나 뜨거운 애피타이저로 속을 달래주고 메인 코스는 소고기 요리나 생선 요리를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디저트까지 나가면 모든 파티는 끝이 난다.


아침부터 준비한 엄청난 음식은 큰 냉동차에 차곡차곡 싣고 출발한다. 그리고 셰프들은 대형 버스를 대절하여 함께 뒤따라 움직인다. 뉴욕 맨해튼에서 파티장까지는 3시간 거리이다. 파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다들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친한 지인과 이야기하며 다소 긴장된 분위기로 이동한다. 파티에 도착 후 헤드 셰프의 지시에 따라 파티장 한편에 마련된 임시 천막 안으로 가지고 온 음식들은 코스별로 정리한다. 그리고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어 임무를 할당받게 되면 각자 위치로 이동한다.


서비스할 준비를 마치고 잠깐 시간이 남으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난 큰 파티에 가면 뭔가 씁쓸함을 앉고 일을 하게 된다. 파티의 손님들과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넘어설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선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한 공간은 화려 조명, 테이블마다 놓인 꽃병들 멋스럽게 꾸며진 연회장과 고급스러운 게스트 화장실이 있다. 그에 반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천막, 선풍기 몇 대가 설치된 푹푹 찌는 실내 그리고 플라스틱 통으로 된 낡은 화장실이 몇 곳이 설치되어 있다.


8월의 햇살이 뜨겁게 비추는 바닷가에 위치한 대저택이었다. 건물이 적어도 3개 이상이 있고 파티 장소는 야외 정원에 따로 마련되었다. 게스트를 직접 대면하는 서버 외에는 아무도 연회장엔 갈 수 없다. 그저 찜통 같은 텐트에 머물며 바삐 음식 준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난 호기심이 많아 가끔 서버들 어깨너머로 파티장을 슬며시 훔쳐보곤 한다. 과거의 계급 사회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난 하층민에게 속할 것이다. 무색의 옷을 입고 명령에 움직이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잠겨본다. 어느 나라나 가진 자와 없는 자는 다른 공간에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자본주의의 최고봉인 미국은 부가 계급을 만들고 일반인들과 다른 삶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곳이다.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우리만의 파티로 대미를 장식한다. 각자 챙겨둔 와인과 샴페인을 나눠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날려 버린다. 웃고 떠들고 하는 동료들 사이로 난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과 사고방식에도 조화롭게 삶을 영위해 나간다. 나 역시도 이 다양한 부류, 인종 속에서 속해 있다. 부자, 가난한 자, 백인, 황인, 흑인 등등 혼합된 각각의 인간들이 큰 하나의 냄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곳. 그곳이 우리가, 또한 후대들이 겪고 이겨내야 할 미래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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