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지인과 과일 공판장엘 주기적으로 다닌다. 과일뿐만 아니라 야채랑 두루 사곤 한다. 어느 날은 집에 양파가 있었음에도 너무나 저렴해서 초등학생 키만큼 큰 커다란 한 망을 구매했다. 같이 가신 분도 같은 마음으로 샀다. 둘이서 횡재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난히 싼 양파 이야기를 집에 도착할 때까지 했었다. 그 후로도 밭에서 만나면 양파 심을일 아니다고 그냥 사 먹는 게 낫겠다고 양파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온 양파는 바람이 잘 통하는 현관 창문 가까이에 놓았다. 원래 있었던 양파를 먹느라고 그렇게 세워둔 양파는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 바닥이 검붉은 핏물로 흥건해 있었다. 시작점은 양파에서부터였다.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는 별개로 깊은 아픔이 있었던지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대야에 물을 받아서 수세미와 걸레로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화장실을 수차례 드나들면서 겨우 수습을 했다. 그런 수선을 피운 후 양파는 내 관심권에 늘 있었다. 그 후로도 같은 현상이 또 일어나서 수습을 하고 큰 박스에 양파를 부어 약간의 흠이 있는 것도 모두 색출하여 버렸다. 먹어보지도 못하고 양파의 양은 푹 줄었다.
그런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서 남편이 한마디 했다. "현관에 있는 양파는 다 버리소." 한 번도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버리란다고 '그럴 수는 없죠.'라고 대답 대신 속으로만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한 보따리씩 버리면서 시원하게 전부를 버리지 못했다. 양파는 다른 야채와는 달리 썩으면 악취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 악취를 감수하면서도 양파를 끝내 전부를 버리지 못했다. 장마 비슷한 날씨 때문에 양파는 날마다 어제보다 더 강력한 악취를 풍겼다. 더운 날씨라 늦은 시간까지 거실에 머무르는데 어제도 양파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양파를 정리해서 버리고 그것도 전부를 버리지 못하고 열한 개를 남겼다.
아마도 그 열한 개의 검붉은 껍질을 한 양파도 머지않아서 버리게 될 것 같다. 무슨 미련인지 전부를 버릴 수 없었다. 먹기 위해 산 양파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검붉은 피와 악취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면서 서서히 내 곁을 떠나고 있다. 그런 양파 때문에 난 비상상황을 맞은 듯 여러 차례 청소를 했어야 했다. 횡재한 기분을 만끽한 벌로 나는 몸서리를 쳐가면서 뒤처리를 다 감당해 냈다. 저렴한 양파는 나를 만나 무슨 메시지를 남겼을까? "뭘 또 그만한 일로 메시지는 또 무슨 메시지?" 하면서 남은 열한 개의 양파가 내일이라도 더 강력한 악취를 뿜어내면서 붉은 피를 흘리는 건 아닌지 살짝 겁이 난다.
나란 사람 참 답이 없다. 양파를 사서 때아닌 처리반 역할을 해내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몇 개까지 그걸 또 물러터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매사가 그렇다. 멀쩡하면 버리지 못한다. 내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 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멀쩡하면 버리지 못한다.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미련 없이 버린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내가 먼저 등을 보이지 못한다. 관계가 회복되도록 노력도 하고 기다려도 보면서 미련하게 그렇게 그 끈을 놓지 못한다. 누구든 맺은 인연 놓지를 못한다. 내 마음의 불편함을 살살 달래면서도 다시 회복되길 기다린다. 양파를 살 때 기뻐했던 그 마음처럼 누가 되었든 내게 크고 작은 기쁨이었을 것이기에 더욱 그 소중함을 놓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