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이야기

텃밭 이야기

by young long

텃밭을 시작한 지 삼 년 차다.

지난해 처음으로 호박을 야심 차게 심었다.

호박넝쿨이 모든 밭을 점령하다 시 피하여 호박넝쿨천국이 되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무성한 호박넝쿨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노랗게 여기저기에 꽃도 넝쿨에 걸맞게 많이 피었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모르지만 열매가 맺긴 하나 꽃이 떨어지듯이 열매가 오래가지 못했었다.

그런데 거의 철거작업을 하듯이 호박넝쿨을 걷어내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 아주 실한 호박이 떡하니 앉아있었다.

그 호박을 보자마자 석에 계신 엄마에게 호박죽을 만들어서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뻐하며 땄었다.

그런 호박을 순전히 나의 과실로 언덕아래 숲덩굴로 굴러가게 만들어버렸다.

굴러가는 호박을 허겁지겁 따라가다가 말벌 떼를 만나서 온몸을 쏘여서 죽을뻔하여 생전 처음 119차를 타고 응급실을 가서 구사일생으로 살게 되었었다.


사연 많은 호박을 다시는 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옆 밭주인들이 호박을 심기 시작하자 안 나면 어쩔 수 없고 하면서 호박씨앗을 심었다.

생각과는 달리 아주 남부럽지 않게 건실한 호박으로 자라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통반장 역할을 하시는 분의 권유로 산 밑에 취, 달래 밭을 만들었는데 모종이 턱없이 부족하여 여백을 남겨두었다. 옆 밭주인이 본인 호박 넝쿨이 산 쪽으로 가면 다시 내 밭을 향하게 넝쿨 방향을 옮기곤 하여 마땅치가 않았었다.

산 쪽을 향해 넝쿨이 올라가면 모두에게 좋은데 굳이 그 호박 주인은 방향을 틀고 또 틀고 하여 내 밭으로 오게 했다.

아주 못 마땅하여 그곳에 고구마순을 심을까, 그 주인에게 말로 해서는 괜한 의가 상할 것 같고 날마다 궁리를 하다가 다른 곳에 있는 내 호박넝쿨 사이에 작은 호박넝쿨이 자라고 있는 걸 발견하여 '이거다!' 하면서 그 작은 호박나무를 수문장처럼 빈 여백의 밭 머리에 심었다.

그날부터 불편한 마음이 싹 없어지면서 내 밭을 향해 돌진하는 옆 밭주인의 호박넝쿨도 불편하지 않았다.

사실 호박이 열릴지 의문이다.

아니 호박이 열릴 거라는 기대는 안 한다.

밭을 만든 다음날 아침 깡패처럼 내게 훈계하듯 목청을 높인 옆 밭주인의 무례함과 마치 함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형국의 옆 밭 호박넝쿨들이 불편했다.

무슨 심사인지 내 호박을 심고부터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것만 같고 무슨 전투에 전략가처럼 스스로의 지략에 탄복하고 있는 중이다. 혼자서는 감당이 안돼서 남편에게도 내 지략을 공개했었다.


그런 내 전략을 눈치챘을 리 없는 통반장 역할을 하시는 분께서 근무 중인데 문자 폭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나만 혼내기 그랬던지 옆 밭들 주인들도 열거하면서 내게 왜, 그곳에 호박을 심었냐고 묻고 사람들이 호박 욕심부리는 걸 볼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잔소리 문자 폭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속내를 숨기려고 그냥 여백이 남아서 심었다고 말했으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작년에 그 많은 호박을 심었어도 딱 하나 땄다고 하면서 이곳에 호박을 심었지만 열릴 거라는 건 기대도 안 한다고 단지 밭의 수문장 역할을 하길 원해서 심었다고, 나도 옆 밭을 침범하지 않지만 옆 밭이 내 밭을 침범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속내를 말해버렸다.

그래도 본인의 특권인양 문자 폭탄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내가 마지막 말을 했다.

텃밭 일궈서 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별 소득도 없는데 몸 고생이 상상 이상이다고 그런데 맘고생까지 해야겠냐고, 행복한 힐링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본인의 잔소리를 멈춰달라는 얘긴데 괜한 내게 너무 열심히라고 또 그걸 잔소리의 반찬으로 삼았다.


사람이 둘만 모여도 소리가 난다.

서로 살아있다는 확인이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