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만난 사람

텃밭, 관계, 취미생활

by young long

모든 인간사가 진절머리가 나서 직장생활도 접고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고자 해서 어느 특정 종교에서 운영하는 꽤 명성이 있는 격리된 곳엘 들어갔었다고 했다. 정화된 삶을 기대하고 그곳 생활을 자원했었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속세와 별 다르지 않은 생활임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도심 속에서 텃밭을 일구면서 살 수 있다는 건 행운 중의 행운이다. 난 그 행운을 얻게 된 사람이다. 그 행운을 얻을 수 있게 해 준 분에게 감사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등산로 입구에 있는 텃밭을 찾는다. 삼 일간의 연휴 때도 연일 비가 내렸음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엘 갔었다. 갈 때마다 우산을 들고 밭에 있는 그분을 만났다. 여덟 명이 그곳에서 밭을 일구는데 날마다 만나는 유일한 분이다.


텃밭을 시작한 지 횟수로 삼 년째다. 며느리가 결혼하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봉사 삼 년 뭐 이런 설화가 있듯이 새로운 텃밭생활도 나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여 조심하며 묵묵히 지냈다. 왕초보인 걸 부인할 수 없기에 선배분의 조언을 금같이 여기며 뭐든 하라는 대로 했다. 하라는 걸 뭐든 열심히 하는 내게 많은 기회를 줬고 그로 인해 필요이상의 중노동이 수차례 계속되었다. 출발은 나를 위하였으나 결과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별 소득은 없지만 노동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본인 윗 밭주인이 비닐을 사용하고 잘 처리하지 못하여 불만이 많았는데 그 밭주인이 일부를 그분께 지으라고 했다며 본인은 하기 싫은데 내게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워낙 작은 밭을 일구던차에 고맙다고 하며 하게 되었다. 내게 기회를 준 그분이 옆에 서서 그 밭에 있는 비닐을 포함한 누적된 쓰레기를 내게 쓰레기봉투에 담아 산 밑으로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묵묵히 몇 날을 버리고 또 버리고 하여 그 밭을 경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다년생 나물류도 구해서 밭을 만들고 고구마도 심고 애정을 갖고 경작했는데 딱 한 해 경작을 하고 나니 원래 밭주인이 본인이 짓겠노라고 했다며 반납을 요구했다. 기껏 쓰레기장 같던 밭을 밭처럼 만들어 놓았더니 반납하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고 허탈하고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 씁쓸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내게 소개한 그분이 좀 미안했던지 완만해서 밭을 일구면 좋을 것 같은 언덕을 지목하여 내게 밭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은 있었으나 신참인 관계로 그런 의견을 묻지도 못하였는데 내게 기회를 줘서 고맙게 생각하며 한 달여를 노동하여 밭을 만들었다. 그 밭에 양파를 심었다. 주변밭주인들이 그 밭을 보면서 많이 부러워한다며 당신 덕임을 강조했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그때마다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말은 그 언덕에서 엉겅퀴 같은 풀이 본인밭으로 넘어와서 풀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분께 제의를 했었는데 안 한다고 해서 내게 기회를 준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반이라도 밭을 일궈서 그 밭을 팔 걸 그랬다고 하는 거였다.


그분의 사회생활의 터전이 그곳 텃밭인 걸 본인도 인정한다. 본인이 여유 있게 씨앗을 뿌려 모종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다른 밭주인에게 얻어서 그걸 원하는 또 다른 밭주인에게 주는 등 선한 역할도 자처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공판장에 갈 기회가 있으면 내게도 함께 가자고 하고 깻묵을 사러 갈 일이 있으면 또 같이 가서 사 오기도 하면서 많은 고마운 일을 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밭주인들이 마땅치 않은 행동을 하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볼 때마다 같은 말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톡으로도 엄청나게 쏟아낸다. 나름 삼 년 차인 내가 벙어리를 면하기로 마음먹고 참지 못하고 할 말을 해버렸다. "무한반복 하시네요." 이렇게 말해버렸다. 당황해하면서 "내가 좀 그랬죠, 늙으면 한 말을 그렇게 또 하고 또 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시어머니도 그랬는데 내가 그런다니까요. 고마워요 말해줘서." 이렇게 말은 하였으나 하루 조용하고 또다시 예전의 80% 정도의 말을 하곤 한다.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면서 마치 그곳 땅 중에 공유지가 본인의 땅인 것처럼 본인의 허락하에 일구고 못 일구고 해야 되는 양 본인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별 뜻이 없어 보이면 또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면서 영주노릇을 톡톡히 하며 지낸다. 또 경작하던 땅 주인이 사정이 생기면 그분에게 누구 살 사람 없냐고 물으면 그분은 최선을 다해 살 사람을 구해서 거래가 성사되게 한다. 스스로 부동산 중개상이라고 지칭한다. 그곳 통반장 역할도 당연히 그분 몫이다.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이곳 텃밭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이면 어디서나 별 다를 바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힐링의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그곳에 발을 딛게 되었으나 뜻밖의 풍경을 마주하곤 하였다. 어느 정도 단단하지 못하면 일반 사회생활에서보다 더한 생각지 않은 일들을 겪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앗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사르르 녹는다. 비 온 후엔 나무마다 은구슬이 어느 보석상 보석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날마다 새로운 풍경으로 반겨주는 텃밭은 늘 감동 그 자체다. 특히 스스로 일군 야채는 날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내 손길 가는 곳마다 쑥쑥 자라는 걸로 화답한다. 그런 텃밭 덕분에 이곳에 영구 거주하게 생겼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