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이야기 2

텃밭, 거름, 고마움

by young long

봄이 되자 텃밭러는 엄청 바빠졌다.

본업이 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온통 텃밭에 마음이 가있다.

차라리 몇만 평의 농지를 가지고 경작한다면 그런 줄이나 알지 그야말로 산비탈에 조각조각 있는 텃밭들 중에 조그마한 한 조각을 경작하고 있는 사람이 이리도 바빠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바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자칫하면 과로사하게 생겼다.

새벽같이 등산로 언저리에 있는 텃밭엘 간다.

어제 심어둔 모종에 썩힌 깻묵을 준 것이 마음에 걸려 몽땅 다시 옮겨 심었다.

뒤늦게 작년에 심었던 고추모종이 깻묵으로 인해 비실비실하다가 죽어버렸던 게 생각이 나서 마음 편하자고 다시 옮겨 심은 거다. 그렇게 늘 일과의 시작이 텃밭이다.


허리가 뚝 부러질 것만 같은데 씻고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 같은 실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이 있다고 괜찮으니까 못하겠으면 못한다고 해도 된다는 말부터 하면서 부탁을 했다.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얼마가 지나자 그냥 됐다고 하면서 그러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부탁을 철회했다.

진즉부터 욕심이 났지만 욕심을 누르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던 게 있었다.

다름 아닌 퇴비로 쓸 수 있는 화분을 분갈이하고 남은 것이 제법 있었다.

그걸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쓰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래도 무면허인 나는 자동차도 없고 하여 욕심은 나지만 그냥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일요일인 어제는 걸어서 십 분 안팎의 거리인 직장을 가서 그걸 가져올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왜냐하면 모종을 사서 심었기 때문에 그 거름이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서였다.

어제는 본가에 가고 없는 남편이 있었더라면 가지러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직하시는 분께 민폐일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냥 욕심을 접었었다.

그래서 출근과 동시에 부탁을 했었던 것이었다.


무게가 20kg 정도인 두 개의 퇴비를 대용량 쓰레기 봉지에 다시 넣어 묶어서 차에 실었다.

무리한 부탁이었다고 사양을 하였건만 뭔 소리냐고 쓰레기봉지에 넣어서 실으면 일없다고 하며 기어코 옮겨주겠다고 하여 텃밭이 있는 산과 가장 가까운 우리 아파트 끝자락에 퇴비를 내려주고 운동하러 갔다.

고맙고 또 소원을 성취한 것처럼 마음이 흡족했다.

그런데 한 고비는 넘겼는데 더한 고비가 남아 있었다.

경사가 거의 45도 정도인 등산로를 올라가야 텃밭이 있다.

그 무거운 걸 두 개씩이나 옮긴다는 건 거의 극기훈련에 가깝다.

5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 시작점에서 두 개의 퇴비를 두고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가 퇴비 하나를 움켜쥐고 "갈 수 있는데 까지만 가져갈게요." 하는 거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건가?

들어주겠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아니에요, 엄청 무거워요. 그냥 두세요."라고 말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저벅저벅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두 계단 옮기고 쉬고를 반복하는데 금세 계단 끝에 서 있었다.

"고맙습니다!"를 거듭하였더니 눈에서 사라졌다.

만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두 개였던 퇴비가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인게 분명한데 마치 꿈같았다.

갑자기 흑기사가 나타나더니 뚝딱 텃밭 입구까지 가져다주는 걸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 고마운 분께 고맙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해본다.

죽을 뻔했지만 정말 살만 한 세상이다.


오랜만에 뵙게 된 선배 텃밭러가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텃밭에 나타나셨다.

뵙자마자 퇴비를 자랑했다. 퇴비를 보시더니 "이걸 어떻게 가져왔어요?" 하는 거다.

흑기사분이 옮겨주셔서 그래도 여기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더니 "남자들은 다 그래요." 그런다.

처음 겪어본 나로서는 의외의 말에 갸우뚱했었다.

겨우 한 숨 돌리는 중에 나타나셔서 심어둔 모종을 보면서 "이러면 안 돼요, 빨리 뽑아서 옮기셔요." 그런다.

이유인즉슨 너무 간격이 가깝다는 거였다.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데도 선배님의 조언을 이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용 대비 수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텃밭에 들인 순수 비용만으로도 유기농 야채를 여유 있게 사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텃밭을 일군다.

힘들 때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면 불만으로 입이 피노키오 코처럼 자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뭐로도 환산하기 힘든 무형의 이 기쁨과 행복한 마음을 어디서 사겠는가?

쑥쑥 자라는 양파만 봐도 그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다.

양파가 야구공 크기만 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지난해처럼 오백 원짜리만 해도 좋다.

자라는 모습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한 거다.

그들은 자꾸 붙잡아서 집에도 못 가게 한다.

중노동 끝이라 온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은데도 기쁨이 되어준 그들에게 연애편지라도 쓰듯이 이렇게 마음을 전한다. 꽃꽂이한 나무에 새순이 돋는 것처럼 내 마음에 새싹이 돋는다.

그리고 주위에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것을 넘치도록 느꼈다. 나의 텃밭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