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농부의 자식이라서일까?
텃밭에 양파, 열무, 대파, 상추를 심어 놓고 온 정성 다해서 돌보고 있다.
풀도 뽑고, 깻묵 썩힌 것도 주고, 부엽토도 뿌려주고, 비료도 뿌리고, 비가 뜸하면 물도 길러다가 주고 끊임없이 얼마 되지 않는 텃밭에 정성을 다한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그곳엘 갔다가 출근하기 직전까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요즘은 양파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집엘 가야 될 시간이 돼서 얼마쯤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양파를 보고 다시 가고를 반복하곤 한다. 진심으로 뿌듯하고 잘 커 준 양파가 대견하여 발길이 돌아서질 않는다.
누군가는 "뭘 얼마나 먹겠다고."라고 자조 섞인 표현을 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땐 마치 탁한 오염수를 한 바가지 들이마신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당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씨를 뿌려두면 새싹이 돋는다.
딱 거기까지만도 그들은 내게 할 일을 다 한 거다.
뭐라고 다 형언할 수가 없다.
마술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앙증맞은 새싹을 보고 또 보고 한다.
2021년 초여름이었을까?
등산로 초입에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곳에 들깨밭을 만들어서 풀을 뽑고 있는데 낯선분이 말을 걸었다.
"텃밭을 만들고 싶으세요?, 저를 따라와 보세요." 하며 앞장서서 산엘 올라갔다.
백 보가 채 못 되는 곳엘 가니 밭이 나왔다.
다른 분이 벌고 있는 밭의 일부를 경작권을 살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여 나의 텃밭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텃밭 생활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소개해주셨던 분이 고랑을 파라, 깻묵을 사러 가자, 여기엔 이걸 심어야 한다, 이러면 안 된다, 아니 이렇게 해야 된다. 등등 수많은 업무지시와 지금은 무슨 씨앗을 뿌릴 때다, 여기 모종이 많으니 가져다 심어라. 등등 호된 초짜 길들이기를 해서 "통반장을 하셔도 잘하실 것 같아요." 또 조금 친숙해져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잘 사용하시더라고요^^."라는 대화를 빼꼼히 내비치곤 하면서 지낸다.
오늘도 수많은 톡을 쏟아내셨다.
그곳에서 함께 텃밭을 일구는 주변분들의 말을 전하셨다.
"자기 언덕 밭을 1007호 아줌마, 세무사 며느리, 윤집사가 많이 부러워해요."라고 톡을 하셨다.
그 언덕밭은 순전히 그곳 통반장역할을 자처하신 소개해주신 분의 각별한 편애로 만들어진 밭이다.
밭과 밭 사이에 완만하고 긴 언덕이 있었는데 내게 그곳을 밭을 만들어서 사용하라는 기회를 주셨다.
햇볕이 유난히 잘 드는 곳이라 그곳을 밭을 일구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주변분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 내게 기회를 주셔서 말할 수 없이 고맙고 기뻤다.
힘든지도 모르고 일주일을 넘게 일궈서 밭을 만들었다.
그 후 옥토로 만들기 위해 온갖 퇴비며 정성을 들이고 또 들이는 중이다.
그런 밭에 양파를 심어 튼실하게 자라고 있으니 대견하고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퇴직을 하면 아이들이 사는 근처로 이사를 해서 그때쯤이면 손주가 생길 테니 육아를 도와야 하나,
그런저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양파밭을 보고 또 보고, 왔다 갔다를 하며 밭을 두고 집엘 갈 수 없어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텃밭 때문에 여길 못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년퇴직을 하면 귀농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백 퍼센트 공감한다.
아무 말 없이 내 사랑을 마음껏 받아주고 쑥쑥 자라주는 식물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까지 찾아가게 만드는 그들의 마력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