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는 내가 좋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들을 보내긴 하였으나 그 시절에 누군들 어렵지 않았던 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북적이던 동네 또래들과의 생활들과 준농부생활들로 온몸으로 느꼈던 생생한 체험들이 이겨먹고도 남는다. 늙어갈수록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이다.
뒤늦게 현타가 밀려오는 걸 뭐로도 막을 수가 없어서 내게 나는 괜찮은 거지? 하는 마음으로 그 괜찮다는 걸 확인하려는 나를 달래는 중이다. 오십 대 중반을 살고 있는 나는 나의 소개를 한점 과장 없이 되뇌어보겠다. 오래간만에. 나의 십 대는 아름다웠고 이십 대는 멋있었으며 삼십 대는 행복했고 사십 대는 치열했으며 오십 대가 되어서야 나를 되돌아보는 중이다. 누가 나를 소개하라고 해서 난 이렇게 소개했었다.
십 대에는 농촌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껏 느꼈으며 원껏 누렸다. 이십 대엔 내 젊음을 제대로 확인하는 길은 일에 미쳐보는 게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여 자타공인 일에 미쳤었다. 삼십 대엔 애를 셋씩이나 낳으면서 대학도 다녔고 그림도 그리면서 행복의 정점을 누렸었다. 사십 대엔 아이 셋을 훌륭한 인재로 기르는 게 내 사명이란 생각으로 정말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 오십 대인 지금은 내게 집중하는 중이다.
초라하게 나의 가시적인 모습을 열거해 볼 생각이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불 꺼라, 뭔 공부냐?" 하는 부모님의 구박(?)을 받으면서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너무나 사정을 알기에 대학을 가고 싶단 말 한마디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이십 대에 서울에 상경하여 직장을 다녔다. 직장에선 매년 최우수사원 표창을 받았으며, 직함 앞에 '최연소'란 수식어를 달며 멋지게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하여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엄마가 대졸은 되어야지 않겠나 싶어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2급 정교사를 취득했다. 셋째가 중학교 입학하자 지금의 직장엘 입사했다.
지금의 직장은 최저시급의 무기계약직이다. 조촐한 처우와는 딴판인 고난도 고컬리티의 매력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 경단녀가 45세에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감사하게도 이 직장을 구해서 보람차게 다니고 있다. 굳이 분석하자면 일을 할 수 있는 게 좋고 어떤 한 직군을 관리하며 거의 운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이라 적성에도 적합하고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적지만 경제적 독립을 가능하게 한 감사한 직업이다. 문제는 내 생각과는 달리 사회적 잣대로는 턱없이 못 미치는 직군인가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기관의 기관장인 남편은 몇 년 전에 내 직업을 '주부'로 적는다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적을까?"라고 물었다. 그때는 '그럴 수 있지!'라며 억지로 이해하려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성사는 안되었지만 우리 큰아이를 소개해준 고마운 분이 있었다. 그분은 내 직업에 대해 관련일을 하고 있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분이 상대적인 면 때문이었는지 내 직업은 얘길 안 하고 남편직업만 얘기를 했다고 굳이 내게 설명을 했다. 그 말을 듣고 궁금이 생각을 해봤다. '이건 또 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답을 구하지 못했다.
다 지난 얘기 같은데 갑자기 오늘사 그 두 분의 행동이 생각나고 또 생각나버렸다. 좀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사랑하는 세 아이들이 성장해서 소중하고 어려운 분들께 저희들 엄마인 나를 소개할 때 주저하거나 저희들 아빠처럼 현재 직업을 얘기하지 못하고 '주부'라고만 한다면 난 어떨까? 이러나저러나 나인데 굳이 대졸이라야 자식들이 평가절하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대학을 졸업한 나나 뭐 다르지도 않은데 그래도 만약에 셋 중 누구라도 엄마인 나를 소개하는데 쭈뼛거린다면 긴 한숨을 쉬면서 죄 없는 하늘을 수도 없이 쳐다볼 것만 같다.
적어도 나는 나의 면면을 좋아한다. 나의 부모님을 사랑하고 나의 남편과 자식을 사랑하고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온 나의 지난 시간들을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나를 뜻밖의 상황에서 굳이 심난하고 슬프게 만들려고 그러냐고 반문하고 싶다. 다시 살라고 하면 그냥 사절할 정도로 원 없이 열심히 산 내게 육십을 코앞에 둔 이 마당에 뭘 어떻게 하라고 누구 마음대로 나를 내세우기를 망설이냐고 묻고 싶다. 현재의 최저시급 받는 무기계약직이 뭔 잘못이라도 되냐고 묻고 싶다. 설령 직업에 귀천이 있다한들 내가 괜찮고 상대가 괜찮지 않다면 그렇다면 상대가 내게 등을 보이면 그만이지 그 등을 보이는 그분의 격이 그러한다는데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내 직업이 뭔 잘못이냐고 묻겠다.
남편 그리고 고마운 그분까지만 이해하고 넘길 수 있지 자식들까지 그런다면 그건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남편도 그분도 사회적 시선이 우선인 거고 나의 모든 걸 깊이 사랑한다거나 자랑스러워하지 못한 결과라 어느 정도 내가 일부분 부족하여 그런 거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자식들이 그런다면 구차하게 이해하려들고싶지 않다. 어느 누가 너희 엄마인 나를 궁금해하거든 있는 그대로 머뭇거리지 말고 소개하길 바란다.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너희의 시작이고 뿌리다. 너희 엄마 관련하여 뭔들 얘기해도 될 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부탁이다. 나를 소리 없이 울게 하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