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봄비가 내린다.
어느 가수의 절절한 음성이 울려 퍼지는 듯한 날씨에 우연히 또 다른 가수의 아픈 사연을 듣게 되었다.
"오래 살고 싶어요."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울린다.
평범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오래 살고 싶어요, "그 말이 깊은 울림을 주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희망사항들이 있었다.
만 오십에 나의 꿈은 하나로 통합되어 버렸다.
'무병장수' 그 공기나 물 같은 그 무병장수가 내 꿈이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이름자의 글자이기도 한 '영'자에 길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long'자를 더해서 젊게 오래 살겠다는 'younglong'을 필명으로 지었다.
영롱하다는 한글 뜻도 좋고 젊게 오래 살겠다는 의지도 담긴 내 필명을 순간적으로 지었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오십 중반의 나이에 내 꿈이 '무병장수'일지를.
"오래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 그 가수는 어린 자식이 많았다.
스스로의 생명이 소중하기도 하였겠지만 그 어린 자식들의 엄마 없이 사는 모습을 생각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는 전신을 전율하게 하였다.
'부디 저 사람을 오래 살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듣게 되었다.
촉촉이 내리는 봄비 속에 쑥쑥 움트는 새싹들을 바라보면서 아무 근심 없이 멍 때릴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무사한 일상이 고맙고 또 고마운 거다.
생명은 유한하여 누구든 때가 되면 꽃이 지듯 그렇게 저물어 간다.
그런데 의술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중병에 걸리면 때 아닌 때에 두려움에 떨게 되고 그저 오래 살고 싶다는 단순하고 본능적인 바람이 생긴다. 어느 한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병에 대한 두려움이.
세상에 내가 살다 보니 별의별 감정을 공감하게 되어버렸다.
질병에 대한 공포, 두려움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깊은 성찰과 번뇌 그리고 노력, 그 결과로 훌륭한 결실을 맺고자 하는 꿈들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생명에 위협을 제대로 느끼면 그냥 단순해진다.
'그저 오래 살고 싶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늙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한 바람이 된다.
왜, 내가 생명을 깨우는 봄비가 내리는 날 아픔에 오열하던 환우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까?
중병을 앓고 난 한 가수의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이 온통 그때의 그 아픈 순간들을 떠오르게 한다.
긴 한숨이 '삶이 무엇인가요?' 하면서 호소하듯 부르짖던 가수의 노랫말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내 생명의 안위를 걱정하듯 그 젊은 가수의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걱정하고 기원해 본다.
우리 함께 오래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