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텅 빈 인간, 리더의 자질

by young long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는 것이다. 존엄하다는 것은 한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중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를 타고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소위 권위가 있다는 직책을 갖은 자가 덕망은 따라주지 못한 채 어찌하다 그 직위에 오르게 되어 주변 사람을 선택적으로 존중하고 존중 안 하고 하는 무례한 짓을 범하는 걸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차라리 허수아비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허수아비는 새를 쫓는 일이라도 하지, 그 무례한 자는 선량한 사람들을 상처를 주면서 본인의 잘못된 행동을 의식을 못한다.


어찌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야만 하는가?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에 선행한다.'라는 말이 왜 대 명제처럼 통용되고 있는가? 어떤 조직에 속해서 생활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눈물짓는 일을 대면하게 되어 애꿎은 원초적이며 당연한 구조에 대해 괜한 '?'를 찍어 댄다. 선택적으로 존중하는 자의 그 선택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여 본인을 자책하여야 하는지, 리더의 자질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소양도 없는 자에 대해 괜한 기대를 하는 걸까? 왜, 아직도 출렁다리를 건너는 불안정한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지, 늙은 나는 아직도 고민을 하면서 산다. '텅 빈 인간' 그 사람의 문제를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도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나는 왜, 내게 문제점이 있는 것처럼 힘들어하는 걸까?


'텅 빈 인간' 그 사람이 허수아비일까? 아님 그 사람이 허수아비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우리들이 허수아비일까? 업무의 용도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 그 이상의 인권을 갖은 사람이라는 걸 망각하고 마치 투명인간 대하듯 하는 그 사람의 심리가 궁금하다. 리더는 정직하고, 투명하고, 청렴하며, 친절해야 된다고 알고 있다. 아니지, 리더는 무슨 리더,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자가 어찌 리더라 할 수 있겠는가? 본인의 직책이 그러하다고 그 직책을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말라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살다 보니 묘한 감정을 맛보게 된다.


'영혼 없음' 그 걸 왜 그리 빨리 눈치채게 되는 걸까? 겉으로만 친절하고 마음이 없음을 우리는 정말 빨리 알아버린다. 반대로 표현은 투박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것도 쉽게 알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왜 굳이 영혼 없는 모습으로 행동하는 걸까? 누구나 쉽고 빠르게 그 마음을 알아버리는데 무엇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누구를 위하여?, 본인의 위엄과 품격을 과시하는 걸까? '난 너희와 다르다.' 뭐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또 다른 대화법일까? 그 의도가 뭐든 주변인들은 그를 안타까워하며 텅 빈 인간으로 밖에 그 이상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 사람의 영혼 없는 행동은 그 행동을 바라보는 다수가 그를 텅 빈 인간으로 본다는 걸 더 늦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한 조직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대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어 대하고 서로 진정성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진실성이 최우선적인 덕목이라는 것이다. 각 구성원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리더는 특권이 아니라 직무이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영혼 없이 대한다거나, 선택적으로 존중한다거나, 필요에 의해 형식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행위는 스스로 리더의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격이다. 좋은 리더는 좋은 조직원들을 불러들인다. 스스로 지원하여 인사이동이 가능한 직종에서 리더의 품격을 갖추지 않고 좋은 직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서 그런 텅 빈 인간이 되었는지는 묻지 않겠다. 더 늦기 전에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누구든.